직원조합, 투명한 총재 선임절차 등 이사회에 요구

세계은행 김용 총재가 연임을 향한 가도에서 직원조합의 반발에 부딪혔다.

김 총재는 세계은행 이사국 가운데 미국은 물론, 독일, 중국의 지지를 받고 있어 연임에 성공할 가능성이 크지만, 힘든 설득과정을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세계은행은 지난 1일 비공개 이사회 회의를 열고, 후임 총재 인선과정에 대해 논의했다.

2012년 취임한 김 총재는 내년 6월에 5년 임기를 마치게 된다.

회의에서 미국과 중국, 독일 등 주요 이사국들은 김 총재의 연임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이는 김 총재의 연임 가능성을 높이는 소식이라고 WSJ은 지적했다.

이사회는 8월 휴회 이후 다시 모여 차기 총재 선임 절차에 착수하기로 했다.

김 총재는 공식적으로 연임 의사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내부적으로 세계은행의 논쟁적인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기 위해 연임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재무부 대변인은 이와 관련, "미국 정부는 세계은행 김용 총재가 실행한 개혁조치를 포함해 총재직 수행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다만 김 총재의 연임 가도에는 장애물이 상당할 것으로 WSJ과 FT는 내다봤다.

이들 장애물로 인해 그의 연임이 무산되지는 않겠지만, 힘든 설득작업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두 신문은 지적했다.

FT는 김 총재가 첫 임기 내내 비판의 수렁에 빠져있었다고 지적했다.

이는 그가 힘든 내부 구조조정을 추진한데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의학박사이자 전직 활동가로서 2014년 에볼라 발병처럼 세계은행의 전통적 업무가 아닌 분야의 위기에 신속하게 개입하도록 조직을 압박했기 때문이라고 신문은 설명했다.

시민사회에서는 1944년 브레턴우즈 체제 이후 미국이 세계은행 총재를 지명하고, 유럽이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를 지명하는 서방국가 간의 암묵적인 합의를 깨야 한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김 총재의 개혁에 불안한 세계은행 직원들 가운데는 새 총재가 오기를 기대하는 경우가 많다.

직원들은 김 총재를 대체할 후보 물색에 나서자면서, '리더십의 위기'를 거론했다.

세계은행 그룹 직원조합은 이사회 앞으로 보낸 서한에서 "세상은 바뀌었고, 우리도 변화해야 한다"면서 "게임의 규칙을 재논의하지 않는 이상 세계은행은 국제무대에서 시대착오적이 될 가능성에 실질적으로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우리는 투명성, 다양성, 국제적 경쟁, 성과주의에 입각한 선임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설파해왔지만, 과거 어떤 세계은행 총재도 이에 걸맞게 선임된 적이 없었다"면서 "그대신 우리는 뒷방에서 이뤄진 거래를 바탕으로 12번 연속 미국인 남성이 총재가 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이는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도입 2년째인 직원 업무 관련 설문조사 결과 고통스럽게도 세계은행의 리더십이 위기에 처했다는 게 명확해졌다"면서 새롭고 공개적이면서도 투명한 총재 선임 절차를 촉구했다.

직원조합에는 1만5천여 명의 세계은행 직원 중 9천 명이 가입돼 있다.

이들은 "고위간부들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고 있는지 직원 3명 중 1명만 이해하고 있다"면서 "간부들이 개방성과 신뢰의 문화를 만들고 있다는 데에 동의하는 직원은 더 적었다"고 지적했다.

직원조합은 총재 후보들을 국제적으로 공모하고, 믿을만한 후보추천위원회를 만들어 투명한 선임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세계은행 고위층에서는 김 총재의 내부적 지지가 직원조합에서 주장하는 것보다는 더 광범위하다고 지적이 나오고 있다.

FT는 김 총재가 연임을 위해 시끌벅적한 캠페인을 거쳐야 할 것으로 내다봤다.

직원들뿐만 아니라 대출규정 개정안을 문제삼고 있는 시민사회단체들이나 전직 직원 네트워크의 비판에도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폴 카다리오 세계은행 전 임원은 "이사회가 완전히 공개적인 절차를 거친다면 김 총재가 연임에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보건에만 초점을 맞춘 엉성하고, 제멋대로의 전략에 시행한 개혁조치도 엉망이어서 연임에 정당성이 부여되기 힘들다"고 꼬집었다.

소년 시절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간 김 총재는 미국 브라운대와 하버드대 의대를 졸업하고 의료자선단체 '파트너스 인 헬스'를 창설, 의료 낙후지역에서 에이즈 퇴치활동 등을 벌이다가 미국 다트머스대 총장을 역임했다.

(서울연합뉴스) 이 율 기자 yulsi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