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왕 지위ㆍ법 정비 방식ㆍ퇴위 이후 지위 관심

일왕이 8일 영상 메시지를 통해 생전퇴위 의사를 밝힘에 따라 일본 정부도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왕위 계승 등의 내용이 담긴 '황실전범(皇室典範)'에는 중도 퇴진 규정이 없다.

이에 따라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의지대로 왕세자인 나루히토(德仁)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서는 법정비가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내부 검토를 거쳐 전문가들로 구성된 협의체를 만들어 광범위하게 의견수렴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곧바로 협의체를 만들 경우 일왕이 정부에 대해 생전퇴위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것처럼 비치면서, 국정개입 논란을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논의 과정에서 관심을 끄는 것은 일왕의 지위, 법 정비 방식, 퇴위 후의 지위 등으로 모아진다.

◇ 일왕의 지위
일본 헌법 1조는 일왕의 지위를 '국민 통합의 상징'이자 '국민의 총의에 기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문제는 생전퇴위제가 도입돼 일왕의 지위가 국민의 총의가 아니라 일왕 자신의 의사에 좌우된다면 '국민 통합의 상징'이라는 의미가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만일 향후 왕에 취임하고 싶지 않다는 왕세자가 생긴다면 이것도 용인해야 하는지도 문제"라고 말했다.

'일왕은 국정에 관한 권능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헌법 4조와의 관계도 논란이 될 수 있다.

일왕이 입장발표를 하고, 이에 정부가 후속조치를 하는 상황은 일왕의 정치참여라는 논란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일왕의 이날 영상 메시지 발표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는 것도 이런 문제점들을 의식해서다.

◇ 법 정비 방식
일왕의 이날 퇴위 의사 표명에 따라 정부가 관련 법을 정비할 경우 어떤 방식으로 할지도 관심사다.

그동안 국회 대정부 질문 등의 과정에서 의원들로부터 일왕의 생전퇴위에 대한 질문이 몇 차례 있었다.

이에 대해 정부측은 ▲ 퇴위한 일왕이 '상황', '법황'(불교에 귀의한 상황)으로서의 권위를 갖고 새 일왕과 양립하는 폐해 ▲ 일왕의 자유의사에 근거하지 않는 강제 퇴위의 가능성 등을 들어 부정적 입장을 견지해 왔다.

생전퇴위를 위한 법안 정비에 나서기 위해서는 정부 스스로 그동안 밝혀왔던 반대론을 뒤집을 새로운 논리 개발이 필요하다.

황실전범 개정 논의 과정에서 과거 대두됐다가 무위로 끝났던 여성ㆍ모계 일왕, '여성 미야케(宮家·여성 중심의 왕실 일가를 만들어 왕족 여성이 분가한 후에도 왕족 신분을 유지하게 하는 것)' 창설 문제가 다시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이에 따라 힘을 얻고 있는 것이 아키히토 일왕에 한해서만 퇴위를 인정하는 특별법을 제정하는 방안이다.

◇ 퇴임 후의 지위
생전퇴위가 도입될 경우에도 해결해야 할 항목들이 적지 않다.

퇴위 후의 호칭, 퇴임 일왕의 생활비 및 주거, 담당 직원 배치 등이 필요하다.

이런 세세한 항목을 담은 새로운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아키히토 일왕에 이어 나루히토 왕세자가 즉위할 경우 왕위 계승 1순위는 동생인 후미히토(文仁) 왕자가 된다.

왕실전범에는 왕의 아들만이 왕세자가 될 수 있도록 한 만큼 새롭게 '왕세제'라는 지위를 마련해야 하는지도 논의해야 할 과제다.

후미히토 왕자에 이은 후계자 순위는 그의 아들인 히사히토(悠仁)다.

(도쿄연합뉴스) 최이락 특파원 choina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