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표 94% 진행…찬성 61.4%, 반대 38.6%, 투표율 55%
군인 정치참여 용인…민주주의 후퇴 평가


태국 군부가 마련한 개헌안이 압도적인 표차로 국민투표를 통과했다.

태국 선거관리위원회는 7일 치러진 국민투표의 개표가 94% 진행된 가운데 찬성표 비율이 61.4%로 반대표 비율(38.6%)을 크게 웃돌았다고 밝혔다.

또 5년간의 민정 이양기에 군부가 선출한 상원의원을 하원의 총리 선출 과정에 참여시킬지를 묻는 투표에서도 58%가 찬성표를 던졌다.

솜차이 스리숫티야꼰 선관위원장은 "5천5만 명의 유권자 가운데 55%가량이 투표에 참여했다.

찬성표와 반대표 차이가 크기 때문에 결과가 뒤집히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사실상 개헌안 가결을 선언했다.

선관위는 잔여 개표를 8일 재개할 예정이다.

이로써 지난 2014년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군부는 5년간의 민정 이양기에 250명의 상원의원을 직접 선발하고, 이들을 통해 선출직 의원들로 구성된 하원의 총리선출 과정에도 개입할 수 있게 됐다.

또 선출직 의원이 아닌 비선출직 명망가 중에서도 총리를 선출할 수 있다는 헌법 조항이 가결됨에 따라, 군부 지도자가 차기 총리로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투표 결과만을 놓고 보면 태국 유권자는 지난 2년간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한 채 정쟁을 억제해온 군부를 지지함으로써, 완전한 민주주의 보장보다 정치적 안정이 더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그러나 전체의 절반에 육박하는 유권자들이 투표에 불참했기 때문에 투표 결과를 국민 대다수의 의견으로 보기는 어렵다.

또 군부는 지난 3월 개헌안을 확정한 이후 정치권의 반대 운동을 철저하게 차단한 채 일방적인 홍보활동을 펼쳐왔다.

따라서 탁신계열 정당인 푸어타이당을 비롯한 정치권이 이번 투표 결과를 순순히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탁신 총리 지지단체인 독재저항민주전선연합(UDD)의 짜뚜폰 프롬판은 "이런 일방적인 상황에서 국민투표가 진행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이어 군부 최고지도자인 프라윳 찬-오차 총리를 겨냥해 "그가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투표결과를 자랑해서는 안된다"며 "개헌 반대론자들은 군부의 위협과 학대 때문에 최선을 다해 싸우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마히돈대학의 고톰 아리야 교수는 "많은 태국인들은 부패 종식과 평화, 발전으로의 회귀를 원했다"며 "나같은 전문가들이 (개헌안을) 비판했지만 우리의 메시지는 국민에게 닿지 못했다"고 말했다.

반면, 태국 제2의 정당 지도자로 투표 직전 개헌안 반대 의견을 피력했던 아피싯 웨차치와 전 총리는 페이스북 계정에 "투표 결과를 받아들이겠다.

군부도 예정대로 내년에 총선을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어쨌든 개헌안이 국민투표를 통과함에 따라 태국은 내년 말께부터 총선을 통한 민정이양 절차에 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투표를 통과한 개헌안을 토대로 새로운 헌법조문을 완성하기까지는 대략 1개월, 대법원이 이를 감수하고 승인하는 데는 대략 45일가량이 소요된다.

이후에는 개헌안에 대한 국왕(왕실) 승인(5개월 소요), 개헌에 따른 정부 조직법 개편(4개월 소요) 및 국왕 승인(3개월 소요) 절차가 진행되며, 모든 절차가 완료된 후 150일 이내에 총선이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프라윳 찬-오차 총리가 주도하는 군부는 지난 2014년 5월 탁신 친나왓 전 총리를 지지하는 '레드 셔츠'와 왕실, 관료 등 기득권층의 '옐로 셔츠' 세력이 대립하면서 생긴 극심한 정치대립과 유혈충돌에 종지부를 찍겠다며 쿠데타를 감행했다.

이후 군부는 정치집회를 금지하고 국민의 기본권도 제한했다.

이 덕분에 지난 2년간 태국에서는 극심한 정치혼란이 수면 아래로 내려갔고, 태국 국민은 표면적으로는 안정된 일상을 누렸다.

탁신 계열의 푸어타이당 등 정치권과 인권시민단체, 그리고 국제사회는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군부 통치 종식과 민주주의로의 회귀를 촉구해왔다.

특히 탁신 지지파는 개헌안이 2000년대 들어 모든 선거에서 승리한 탁신측의 영향력을 약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비판해왔다.

(방콕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meola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