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대통령선거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의 대권가도에 빨간불이 들어오고 있다. 무슬림과 여성 비하 등 문제성 발언을 그치지 않아 당 안팎에서 거센 비난을 받는 가운데 지지율은 곤두박질쳤다. 공화당 내부에서는 그의 중도 낙마(落馬) 시나리오까지 거론하고 있다.
'트럼프 패닉'에 빠진 미국 공화…낙마 대비 물밑서 '대타 찾기'
◆낙마 시 RNC가 대타 찾아야

ABC 방송은 3일(현지시간) 공화당 지도부가 트럼프의 갑작스러운 낙마에 대비한 비상계획(플랜B)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가 당내 경선과 전당대회를 통해 공식 선출된 만큼 당이 그의 후보직을 강제로 박탈할 권한이나 제도적 장치는 없다. 트럼프가 스스로 물러날 가능성도 현재로선 제로(0)에 가깝다.

문제는 트럼프가 지지율 급락 등으로 본선을 완주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때다. 공화당 전당대회 직후 힐러리를 앞섰던 지지율은 계속 미끄러졌다. 3일 발표한 폭스뉴스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후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게 10%포인트 차로 뒤지는 것으로 나왔다.

트럼프가 낙마하면 공화당 전국위원회(RNC) 위원 168명이 당원 중 트럼프의 ‘대타’를 찾아야 한다. 후보 선출에 걸리는 시간과 연방선거관리위원회 후보등록 절차 등을 감안하면 늦어도 9월 초에는 이런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는 게 당내 법률전문가들 의견이다.

◆공화당은 자중지란(自中之亂)

워싱턴포스트(WP)는 “공화당이 트럼프의 후보직을 놓고 새로운 단계의 패닉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트럼프는 지난달 28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자신의 무슬림 입국금지 정책을 비판한 무슬림계 미국인 변호사 키즈르 칸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었다.

“민주당이 원고를 써줬냐” “칸의 부인이 남편 허락을 받지 않아 한마디도 안 했다”는 트럼프의 발언이 무슬림 비하 발언으로 비쳐졌다. 민주당, 백악관뿐만 아니라 공화당 지도부에서도 강한 비판을 받고 있다. 공화당의 일부 골수 지지자는 트럼프 대신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찍겠다며 잇따라 탈당했다. 상·하원 의원선거에 나선 공화당 후보들이 트럼프와 공동 유세하는 것을 손사래 치는 기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트럼프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까지 나섰다. 그는 “지금 대선은 (힐러리와 트럼프) 두 사람 가운데 누가 더 용납할 수 없는 인물인지 골라내는 게임”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지금 자신이 힐러리보다 더 용납할 수 없는 인물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함으로써 힐러리의 승리를 돕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수 줄이는 게 핵심”

일각에서는 공화당 내 반(反)트럼프 세력이 마지막으로 트럼프를 전복시킬 기회를 잡았다는 해석을 내놨다. 이들은 지난달 전당대회에서 규정을 바꿔 1차 투표 때 대의원의 자유투표를 허용하자고 했다가 지도부에 진압당했다.

공화당 내부에선 트럼프가 지금의 선거 스타일을 바꾸지 않는 한 상황을 반전시키기 힘들다는 의견도 흘러나온다. 1996년 밥 돌 전 상원의원 대선캠프에서 일한 선거전략가 스콧 리드는 “판을 완전히 리셋(재조정)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그는 “가장 급한 일은 트럼프가 하루평균 아홉 번씩 하는 언론 인터뷰부터 그만두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대선 후보가 너무 말이 많고, 그 과정에서 실수가 계속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의 카리스마 넘치고, 즉흥적이며 빠른 판단력이 경선 과정에서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다. 대선 본선과 국가 경영에선 좀 더 신중하고 주위 의견을 아우르는 치밀한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