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에서 얼굴을 맞댄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외교장관들이 이틀간의 격렬한 논쟁 끝에 25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우려를 담은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무력화한 지난 12일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판결 반응이나 중국 측 주장에 대한 반박을 담지 않아 김이 샜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세안은 이날 공동성명에서 “우리는 진행되는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며 “남중국해에서 평화와 안정, 안전과 항행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고 밝혔다.

올해 아세안 의장국인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서 24일 열린 ‘제49차 아세안 외교장관 회의’는 PCA 판결 후 첫 아세안 회동이어서 중국에 대한 강한 경고가 나올 것으로 기대됐다. 분쟁 당사국 필리핀과 베트남이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친중(親中) 성향 캄보디아의 반대로 25일 아침까지도 합의를 이루지 못했고 결국 이날 오후 원론적 수준의 성명을 내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아세안은 ‘만장일치’ 합의제를 채택해 한 회원국만 반대해도 공동 보조를 취할 수 없다. 아세안은 12일 PCA 판결 직후 공동성명을 내는 방안을 논의하다 포기했고, 지난달 중국과의 외교장관 특별회의에서는 캄보디아와 라오스의 반대로 공동성명을 채택했다가 철회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아세안 내부에서는 만장일치 합의제를 손봐야 한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고 싱가포르 일간 스트레이츠타임스가 보도했다.

상호 비방으로 회원국 간 결속도 급격히 흔들렸다. 비공개 외교장관 회의에 참석한 한 외교관은 AP통신에 “캄보디아는 진정한 C대국(중국을 지칭)의 충신”이라고 비꼬았다. 아니파 아만 말레이시아 외교장관이 이번 회의에 불참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된 것도 논란을 일으켰다. 말레이시아는 분쟁 당사국이면서도 장관 대신 이스만 하심 사무국장을 참석시켜 중국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들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