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외교수장 중재판결 후 첫 대면…'공동성명'도 치열한 신경전 전망

24일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서 개막하는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관련 연례 외교장관 회의는 남중국해 문제를 논의하는 최대 격전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남중국해 중재판결이 나온 지 보름 만에 열리는 이번 회의는 분쟁의 핵심 당사국들이 모두 포진한 곳에서 열리는데다, 중국의 영유권 강화 행보를 저지하려는 미국과 일본도 참석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회의 개막에 앞서 원색적인 경고음부터 날렸다.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에 따르면, 이번 회의와 연계된 고위관리회의(SOM)에 참석하기 위해 비엔티안을 찾은 류전민(劉振民) 외교부 부부장은 전날 현지에서 중국 매체들을 상대로 기자회견을 열고 "(중국과 아세안 사이를) 이간질하지 말고 갈등을 부추기지 말라"고 경고했다.

또 아세안을 향해 지역의 협력과 단결, 일체화를 방해하는 '역외 대국'(미국)의 개입을 막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는 이번 회의에 참석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 등이 아세안+3(한중일), 동아시아정상회의(EAS) 등을 무대로 남중국해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하며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을 압박할 것에 대비한 선제조치로 풀이된다.

남중국해 중재판결 이후 미중 외교 수장이 대면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은 남중국해에 항공모함 등 대규모 전력을 투입하며 중국의 인공섬 건설 행위를 강력히 견제하고 있고, 중국도 이에 맞서 전략폭격기 등을 동원해 남중국해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전개하면서 양측의 군사적 갈등 수위도 급격히 고조됐다.

중국은 이에 앞서 지난 15일 몽골에서 진행된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서 남중국해 중재판결을 놓고 일본과 공방전을 벌였지만, 미국이 빠졌다는 점에서 '전초전'에 불과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과 첨예한 영유권 갈등을 벌이는 필리핀, 베트남 등은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려 대중 공세의 고삐를 바짝 죌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세안 국가들은 시작부터 '적전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어, 얼마나 효과적인 대응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외신에 따르면 비엔티안에 모인 아세안 10개국 외교관들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관련한 공동 입장을 밝히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친중국가로 꼽히는 캄보디아의 반대로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이번 아세안 회의 공동성명에 남중국해 문제를 반영하는 문제를 놓고서도 미국과 중국을 주축으로 하는 양측 진영이 첨예한 물밑 신경전을 전개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ASEM 회의에서도 일본 등이 의장성명에 남중국해 문제를 직접 포함하려고 시도했지만, 중국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원론적 문구만 삽입하는데 그쳤다.

(베이징연합뉴스) 이준삼 특파원 js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