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 테러조직 귈렌세력 뿌리뽑겠다"…미국에 귈렌 송환 공식요청
오늘 에르도안 '중대발표' 예고…사형제·이슬람주의 개헌 여부 촉각

실패한 쿠데타의 배후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적인 재미 이슬람학자가 있다고 보는 터키 정부의 이른바 '바이러스 살균' 규모가 군, 경찰, 법조인, 관료, 교육계까지 합쳐 5만명에 육박했다.

19일(현지시간) AP통신, BBC 방송, 일간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터키 정부는 미국에 망명한 펫훌라흐 귈렌의 송환을 미국 정부에 공식 요청하는 한편 귈렌 추종세력을 터키에서 뿌리 뽑겠다며 사찰의 속도를 높였다.

비날리 이을드름 터키 총리는 귈렌 송환을 미국에 요청했다고 밝히면서 귈렌에 동조하는 세력을 '유사 테러조직'으로 지목하고 "귈렌에 동조하는 세력이 감히 우리 국민을 배신하지 못하도록 뿌리째 도려내겠다"고 말했다.

터키 언론과 관리들에 따르면 터키 정부가 15일 밤 벌어진 쿠데타 시도를 이유로 이날까지 체포하거나 직위해제, 사표를 요구하는 등 겨냥한 이는 5만명에 달한다.

쿠데타 직후 체포된 군인은 6천명 이상이며 경찰 8천명가량이 직위해제되거나 구속됐다.

또한 판·검사 3천명과 전국 주지사를 비롯한 내무·재무부 등 소속 공무원 수천 명이 정직되거나 체포됐다.

터키 정부는 이어 19일 하루에만 총리실 소속 257명, 교육부 소속 1만5천200명, 내무부 소속 8천777명, 종교청 소속 492명, 에너지부 소속 300명 등을 직위해제했다.

또한 터키 고등교육위원회는 전국 모든 국공립·사립대학 학장 1천577명 전원에게 사표를 내라고 지시했다.

서구권은 터키가 쿠데타에 직접 가담한 일부 군부 세력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행정·사법·교육계 인사 수만 명을 귈렌 추종세력으로 몰아 대거 '청산'하려는 과정이 쿠데타에 따른 정당한 대응이라기보다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권력을 강화하려는 시도일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한때 정치적 동지였다가 숙적이 된 귈렌 세력을 '유사 테러조직'이라고 계속 비난해왔으며 2013년 에르도안 측근들에 대한 부패 수사가 벌어졌을 때도 사법당국이 귈렌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며 사회 각계에서 귈렌 지지파를 몰아냈다.

그는 당시에도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국가기관이 아닌 외부 조직의 명령을 받는 군, 검찰, 경찰, 판사, 관료들을 허용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20일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고 나서 '중대발표'를 할 계획이다.

발표 내용은 전해지지 않았지만, 쿠데타 후속 조처뿐 아니라 사형제와 대통령제로의 전환을 담은 개헌 추진을 재천명하거나 쿠데타 진압의 일등공신인 이슬람주의 지지세력에 힘을 실을 이슬람주의 개헌 추진을 발표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권위주의 지도자로 꼽혀온 에르도안 대통령이 쿠데타 대응을 계기로 거침없이 권력 강화에 나서자 터키 내 정세 불안과 사회 갈등이 깊어지고 있으며 국제사회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게다가 유럽 각국에 깊숙이 자리를 잡은 터키 이민자 사회에서도 갈등이 커지면서 이민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온 유럽 국가들의 시름은 더욱 늘었다.

바이에른주정부의 요아힘 헤르만 내무장관은 베를리너차이퉁과의 인터뷰에서 "터키 사회에 깊은 분열이 나타나고 있다"며 "에르도안 지지파와 반대파 사이에 폭력이 점증할 위험이 독일에서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터키가 귈렌 송환을 공식 요청한 가운데 시리아 사태에서 협력을 유지해야 할 터키의 요구를 무작정 거부할 수도, 친서방 성향의 정치적 망명자를 쉽게 송환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진 미국은 이 요청을 검토한다면서도 법치 존중을 재차 요구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9일 에르도안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쿠데타 세력에 대한 수사와 기소는 "민주제도와 법치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한 민주적으로 선출된 터키 민간정부를 폭력적으로 제거하려 했던 쿠데타 시도를 다시 한 번 강하게 비난하고, 터키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고 백악관은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cheror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