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사장이 지중해에서 휴가 중이던 스튜어트 체임버스 영국 ARM홀딩스 회장에게 ARM 인수합병(M&A) 의사를 타진한 건 약 2주 전이다. 이들은 각자 검토를 거친 뒤 쿠데타가 발생하기 전 터키의 한 항구도시 레스토랑에서 만나 M&A에 합의했다. 소프트뱅크가 세계 2위 반도체 설계회사 ARM을 3조3000억엔(약 35조원)에 인수하기로 한 협상은 이처럼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영국 반도체 설계 ARM 고가 인수 논란…손정의 "35조원 베팅? 오히려 싸게 산 것"
◆“IoT는 모든 인류와 제품의 핵심”

손 사장은 지난 18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ARM 인수는 내 인생에서 가장 흥미로운 일”이라고 말했다. 소프트뱅크 창사 이래 최대 금액의 M&A이자 아시아 기업으로도 최대 규모의 영국 기업 투자를 단행한 소감이었다.

그는 고가 인수라는 시장의 논란을 의식한 듯 “43% 프리미엄이 비싸다는 견해도 있지만 ARM의 미래 성장잠재력을 감안하면 10년 후에는 ‘이 가격이면 싸게 샀다’고 할 것”이라고 했다.

그간의 투자원칙도 소개했다. 손 사장은 “지금까지 투자도 패러다임 변화 초입에 결정했다”며 “다음 패러다임은 사물인터넷(IoT)”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 전자상거래 초기인 2000년 마윈 알리바바 회장을 만나 알리바바에 2000만달러를 투자한 뒤 3000배(580억달러)에 이르는 ‘초대박’을 터뜨렸다.

손 사장은 “IoT는 ‘기회’며 모든 인류와 제품의 핵심이 될 것”이라며 “스마트폰과 자동차, 가전뿐 아니라 모든 게 인터넷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ARM 본사를 케임브리지에 그대로 두고 향후 5년간 ARM의 영국 인력을 두 배로 늘릴 생각”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이날 런던증시에서 ARM 주가는 성장 기대감으로 41% 급등했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결정에 따른 파운드화 가치 하락이 인수 이유 중 하나라는 분석에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브렉시트는) 0.1%도 내 머리에 없었다”며 인수 판단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잘라 말했다.

◆부채 늘어 ‘승자의 저주’ 우려도

이번 인수를 계기로 손 사장의 ‘레버리지(차입) 경영’이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ARM 인수대금 3조3000억엔을 모두 현금으로 결제하기로 했다. 지난 3월 말 기준 소프트뱅크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2조5000억엔이다. 이후 알리바바 지분 일부와 핀란드 게임업체인 슈퍼셀 지분을 전량 매각한 대금 등 2조엔을 추가했다.

손 사장은 손안에 현금 4조5000억엔을 갖고 있지만 미즈호은행 등에서 브리지론 방식으로 1조엔을 빌려 인수대금을 마련하기로 했다. 3월 말 기준 12조엔인 소프트뱅크 부채가 더 늘어나는 것이다. 국제신용평가사의 한 애널리스트는 ARM 인수 발표 전 “소프트뱅크가 대형 인수에 나서면 신용등급이 더 강등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1일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소프트뱅크 신용등급을 ‘BBB-’에서 투기등급인 ‘BB+’로 하향 조정했다.

도쿄증권거래소에서 소프트뱅크 주가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19일 장 초반 11% 이상 급락하며 4년 만에 장중 기준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무리한 인수로 위기를 자초하는 ‘승자의 저주’를 시장이 우려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자회사인 미국 스프린트도 소프트뱅크 지원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에 5% 하락했다.

도쿄=서정환 특파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