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쿠데타 땐 민주정부 사실상 외면…이번엔 에르도안 정권 즉시 지지

터키의 군부 쿠데타를 계기로 미국의 이중적인 중동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휩쓴 민주화 운동인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이 지역에서 일어나는 쿠데타에 대해 그때마다 다른 기준을 적용한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은 15일(현지시간) 밤 터키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정권을 전복하려는 군부 일부의 쿠데타가 일어나자 에르도안 정권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즉시 발표했다.

백악관은 16일 터키의 쿠데타에 대해 "미국은 민주적인 선거로 선출된 터키의 민정 정부을 흔들림없이 지지한다는 점을 강조한다"며 쿠데타 세력을 인정하지 않고 에르도안 정권이 여전히 합법정부라고 확인했다.

에르도안 정권의 권위주의적이고 비민주적인 통치 행태에 대한 국제적인 비판 여론이 높아지고 있음에도 미국은 현재 중동 상황을 고려할 때 불안한 쿠데타 세력보다는 어느 정도 협조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현 체제를 선택한 것이다.

이슬람국가(IS) 격퇴전과 난민 사태 등 중동 현안을 둘러싸고 터키 정부가 미국의 기대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터키의 지정학·군사적인 중요성을 고려하면 정체가 불분명한 쿠데타 세력보다는 에르도안 쪽이 통제하기 쉽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이번 쿠데타에 미국이 개입했다는 주장이 나올 만큼 에르도안 정권은 미국에 고분고분하지는 않다.

미 국무부는 이런 주장에 대해 "터무니없는 헛소문"이라고 일축했다.

반대파를 용인하지 않는 에르도안 정권의 권위주의 통치를 비판하는 이들은 내심 이번 쿠데타가 성공하기를 바랐을 테지만 미국의 재빠른 선택에 실망하는 기색이다.

이 때문에 꼭 3년전 이집트에서 일어난 쿠데타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민주적 선거를 통해 뽑힌 무함마드 무르시 정권을 2013년 7월 압델 파타 엘시시 당시 국방장관(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군부가 쿠데타로 전복했다.

미국은 이 쿠데타 직후 전투기 인도를 중단하는 등 일련의 조처를 하긴 했지만 이번 터키 쿠데타처럼 단호하고 신속하진 않았다.

미국은 당시 군부의 무르시 축출을 '쿠데타'로 규정해야 하는지의 문제를 놓고 갈팡질팡했다.

미국은 이스라엘과 30여년간 우호적이었던 이집트 군부를 외면할 수 없었던 데다 무르시 정권이 미국의 전통적 우방인 걸프 왕정이 꺼리는 이슬람주의 무슬림형제단의 지지를 받았던 탓이다.

2013년 10월 일시 중단했던 미국의 이집트에 대한 군사원조도 이란 핵협상이 타결된 직후인 지난해 4월 수니파 달래기 차원에서 재개했다.

같은 쿠데타지만 이집트의 경우 결국 민주적 선거를 통한 정부에 등을 돌렸고 터키에선 이슬람주의 성향이 강하지만 민주적 선거를 명분으로 기존 정부를 지지한 것이다.

이란 최고지도자의 수석보좌관 알리 아크바르 벨라야티는 이런 미국의 이중적인 태도를 정확히 짚었다.

그는 시리아에서 이란과 대치 중인 에르도안 정부에 대해 16일 "이란은 터키의 쿠데타를 비판하고 민주적 절차로 뽑힌 정부를 지지한다"면서 "(서방과 터키도) 민주적 절차로 뽑힌 시리아 알아사드 정부를 지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등 서방과 터키는 알아사드 시리아 정부에 대항하는 수니파 반군을 지원하고 있다.

중동에 영향이 큰 미국의 이런 '이중 잣대' 탓에 대중동 정책이 권위를 상실하고 역내 위기에 국제사회의 힘이 집중되지 않는다는 시각도 있다.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hska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