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트남 "국제규칙 준수해야" vs 중·러 "역외국 빠져라…국제화 반대"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의 남중국해 중재판결이 나온 지 나흘 만에 몽골에서 열린 제11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아셈·ASEM)는 예상대로 '남중국해 격전장'이 됐다.

일본을 중심으로 한 중재판결 지지 국가들은 규칙 준수를 촉구하며 중국을 압박했고, 중국은 이에 대해 러시아 등 자국 입장을 지지하는 국가들과 손을 잡고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16일 교도통신, AFP 등 외신들에 따르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이날 ASEM에서 남중국해 문제는 국제사회의 공통 관심사라고 지적하고 "법에 의한 지배는 우리가 계속 고수해야 하는 기본 원칙"이라고 말했다.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무력화한 판결을 중국이 수용할 것을 촉구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전날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도 '규칙'(rules)존중을 거론하고 중국의 남중국해 군사 거점화에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남중국해 문제로 중국과 대립하는 베트남의 응우옌 쑤언 푹 총리, 필리핀 외무장관 등과도 만나 '규칙 준수' 입장을 교환하고, 앞으로 열릴 아세안 다자회의에서 이번 중재 판결과 관련해 협력해나가기로 했다.

ASEM에 참석한 도널드 투스크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도 기자들에게 EU는 '국제법 준수' 입장을 유지하고 있으며 PCA 결정을 전적으로 신뢰한다고 밝혔다.

이번 다자무대에서 남중국해가 다뤄지는 데에 반대해온 중국은 반발했다.

리 총리는 전날 아베 총리와의 회담에서 '직접적 당사자'가 아닌 일본은 "언행에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개입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아셈 연설에서도 2차대전 이후의 질서 수호, 냉전사유 포기, 국제법 왜곡·이중기준 반대 등을 주장하며 중재판결을 수용하라고 요구하는 미국, 일본 등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특히 러시아를 비롯한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등 친중국 성향의 국가 지도자들과 연쇄 회동을 갖고 '반(反) 남중국해 중재판결' 전선을 강화했다.

중국 외교부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가 리 총리와의 회담에서 "러시아는 중국의 원칙적 입장과 직접 당사자가 우호적 협상을 통해 남중국해 갈등을 해결하는 것을 지지한다.

역외세력(미국 등)이 간섭하고 남중국해 문제를 국제화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이번 남중국해 영유권 판결로 촉발된 국제사회의 찬반 외교전은 미국과 중국의 진영 논리와 양국의 '우군' 확보 경쟁 속에 앞으로 더욱 가열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오는 26일 라오스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 회의나 9월 중국 항저우(杭州)에서 열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비하면 이번 ASEM은 전초전에 불과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편, 교도통신은 이번 정상회의에서 남중국해 문제 외에도 테러, 북핵 문제 등이 주요 이슈로 논의됐다고 전했다.

15일부터 이틀 일정으로 열린 ASEM은 이날 오후 폐회식에서 의장성명, 울란바토르 선언 등 결과문서를 채택하고 막을 내린다.

(베이징연합뉴스) 이준삼 특파원 js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