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혁명' 열망 진보·젊은층 힐러리식 기성정치에 극도 반감

미국 민주당 사실상의 대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13일(현지시간) 지난해 4월 대권도전에 뛰어든 이래 가장 큰 선물을 받았다.

135일간의 경선 레이스 내내 자신을 끈질기게 위협했던 경쟁자 버니 샌더스(버몬트) 상원의원의 지지선언이 그것이다.

하지만 민주당 안팎에서는 이날 선언에도 클린턴 전 장관이 과연 샌더스 의원의 지지층, 특히 정치혁명을 강력히 열망했던 젊은이들의 지지를 고스란히 넘겨받을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주류 중의 주류인 클린턴 전 장관과 워싱턴 기성정치를 타파하겠다는 일념으로 대권 도전에 나선 철저한 '아웃사이더'인 샌더스 의원의 이념 격차가 워낙 큰 데다가, 격한 레이스가 장기화하면서 후보 당사자들은 물론 지지층에서도 갈등이 골이 깊이 팬 탓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클린턴 전 장관과 샌더스 의원이 합동유세에서 단합을 강조했지만, 화요일의 '정치적 결혼'이 실제 작동할지는 매우 불투명하다'며 "서로의 많은 지지자가 각자의 후보에 대해 깊은 의심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이날 두 사람의 합동연설도 다소 어색한 모습을 연출했다는 게 미 언론의 평이다.

WP는 클린턴 전 장관과 엘리자베스 워런 등 '여성 복식조'가 지난달 27일 오하이오 주에서 함께 출연해 서로를 한껏 치켜세우며 공적인 '트럼프 때리기'에 열을 올렸던 사실을 거론하며 "두 사람은 서로에게 미지근했다. 클린턴과 워런은 태그매치의 한팀 같았지만 클린턴과 샌더스는 단지 합동출연으로 보였다"고 지적했다.

24세의 샌더스 캠프 자원봉사자인 브린 맥도널은 WP에 이날 지지 선언에 대해 "기쁘다고 말할 수 없다"며 "그것은 그로서는 어쩔수 없는 정치적 몸짓이다. 오히려 트럼프를 지지하겠다는 버니 지지자들도 있다"고 말했다.

CNN방송도 "지지 선언으로 샌더스 의원이 대선을 돕지않고 수수방관한다거나, 3당 후보로 출마하는 정치적 악몽의 시나리오는 피했다"면서도 "그러나 모든 샌더스 지지자의 마음을 돌리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샌더스 의원 지지자들이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지지로 대거 몰려가는 일은 상상하기 힘들다는 게 대체적 관측이다.

지난달 실시된 WP와 ABC방송의 공동 여론조사를 보면 샌더스 의원 지지자의 8%만이 트럼프를 지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워싱턴 기성정치에 성난 샌더스 의원 지지층의 상당수는 이라크 전쟁을 지지하고 자유무역협정에 찬성했거나, '이메일 스캔들'에서 보듯 특권적이고 월스트리트와 가까운 클린턴 전 장관을 선뜻 지지할 수 없다고 한다.

이 때문에 많은 샌더스 의원 지지자가 11월8일 대선 당일 투표를 포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클린턴 전 장관과 민주당이 최저임금 15달러로의 인상과 건강보험 개혁, 대학 무상교육 등 샌더스 의원의 진보정책을 공약과 정강에 상당히 반영한 것도 그의 지지자들을 붙잡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WP는 샌더스 의원이 앞으로 얼마나 클린턴 전 장관을 위해 뛰어줄지는 두고 볼 일이라고 지적했다.

양측 참모들은 샌더스 의원이 경선에서 승리를 거뒀던 '러스트 벨트'(쇠락한 공업지대)인 위스콘신과 미시간, 뉴햄프셔 등지에서 지원유세를 벌이는 방안을 계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무역협정으로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진 이들 지역에서 샌더스 의원의 지원사격이 트럼프의 '보호무역 공세'에 맞불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워싱턴연합뉴스) 신지홍 특파원 shi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