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패권국이 작은나라에 완패", WP "긴장·대립 새 시대로"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다룬 국제분쟁중재기구 상설중재재판소(PCA)의 판결이 12일(현지시간) 중국의 '완패'로 결론 나자 미국 언론들은 굴욕감을 맛본 중국의 분노가 미국을 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의 판결 이행을 강제할 수단이 없다는 점에서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미국의 갈등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일제히 전망했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패권국 중국이 작은 나라 필리핀에 완전히 패배했다"며 "중국이 가장 두려워한 굴욕적인 결과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WSJ은 필리핀의 제소를 "미국이 기획한 익살극"이라고 묘사한 중국 언론들의 보도를 전하며 이번 판결에 대한 "중국의 분노가 이제 미국을 향할 것"이라고 전했다.

미 NBC도 "제소 당사국은 필리핀이지만 중국은 지금까지 미국이 지역 동맹국을 통해 상황을 악화시켰다고 비난해왔다"고 말했다.

필리핀이 제소 당사국이긴 하지만 이번 소송을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갈등을 빚은 미국의 '대리전'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중국 정부가 국제적인 사법 심판에 소환된 것은 처음"이라는 점에 주목하며 중국이 자국에 불리한 판결을 받아들이길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NYT는 "국제적인 힘을 키우려는 중국과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이 중요한 갈림길에 섰다"며 "중국이 남중국해 장악력을 강화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고 보도했다.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보니 S. 글레이저 연구원은 NYT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체면을 구겼다"며 판결 이후 "중국이 아무것도 하지 않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점에서 강력한 반발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중국의 영유권 주장이 법적이나 역사적인 근거가 없다는 판결을 계기로 "남중국해 긴장과 대립의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WP는 이번 판결로 중국이 남중국해 영유권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를 강화하거나 반대로 '남중국해 굴기' 전략을 중단해야 하는 "딜레마에 직면했다"고 강조했다.

필리핀 등 남중국해에서 중국에 맞서는 국가들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WSJ은 "필리핀의 기념비적인 승리에 고무된 '모방 제소'가 있을 수 있다"며 베트남을 유력한 '다음 타자'로 거론했다.

NYT는 PCA 판결이 "중국과 분쟁 중인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대만, 베트남 등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계기를 만들어줬다"고 분석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마커스 게링 교수는 "이번 판결이 남중국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지만 미래 협상들에 강력한 영향력을 줄 수 있다"며 "골포스트가 필리핀과 (중국과 분쟁을 벌이는) 국가들 쪽으로 더 가까이 옮겨진 셈"이라고 말했다.

NYT는 이어 사설에서는 "이번 패소에 대한 중국의 반응은 국제법에 대한 중국의 태도나 자신들의 막강한 권력을 사용하는 방법, 그리고 국제적 야망에 대해 전 세계에 많은 것을 알려줄 것"이라며 "지금까지의 반응은 걱정스럽다"고 평가했다.

NYT는 "이 문제에 있어 중립국인 미국은 평화롭고 합법적인 경로로 진행되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라며 외교적 해법과 군사적 압박을 병행한 오바마 대통령의 접근법이 적절했지만 보다 "어려운 부분은 올바른 균형을 잡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NBC는 판결 이후 중국이 어떻게 대처할지를 예측하면서 "이번 판결이 중국 내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강력한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도 이번 판결로 "미국이 남중국해에서 외교적인 해법을 압박하는 기회를 잡았다"면서 "중국과의 대립의 골이 더 깊어질 위험성도 커졌다"고 전했다.

윌리엄 버크 화이트 펜실베니아대 교수는 CNN방송 기고문에서 "판결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제 관련국들이 어떻게 대응하는가"라며 "이번 판결은 역내에서 군사적 충돌을 피하고 중국이 평화적으로 부상하기 위한 최선의 전망을 제시함으로써 장기적으로 중국의 이익에도 부합한다"고 진단했다.

버크 화이트 교수는 "중국은 이 같은 원칙을 공개적으로 수용할 필요는 없으며, 말과 행동에 있어 점진적 변화를 통해 이를 달성할 수도 있다"며 "이번 결정을 무시하는 것은 역내에서 리더십을 강화하려는 중국의 목표에도 반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또 다른 관련국과 단체들은 역내 정치적 안정과 '법의 지배'라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중국이 기존의 주장과 행동을 점진적으로 완화할 여지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남권 김정은 기자 kong7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