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한 中, 인공섬 건립 가속·전략자산 배치 등의 대반격 가능성
경제적 패권경쟁 군사영역으로 확대…군비 경쟁도 촉발할 듯
미중, 본격적 '줄세우기 외교전' 예고…中-필리핀 대화 여부 주목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또 한 번 갈림길에 섰다.

네덜란드 헤이그의 상설중재재판소(PCA)가 12일 발표한 원고측 필리핀의 손을 전적으로 들어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관한 중재 판결을 내리면서 미중 대립이 더욱 격화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 크다.

소송 당사자는 중국과 필리핀이지만, 바탕에는 아시아의 맹주 자리를 탈환하려는 중국과 이 지역에 대한 주도권을 유지하려는 미중간 패결 대결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자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근거를 박탈한 이번 판결에 분노하고 있다.

중국은 이 지역에 대한 군사력 배치를 한층 강화하고 국제사회에 대한 여론전을 확대하며 '판결 무력화' 행보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이번 판결로 남중국해 개입의 정당성을 부여받은 미국은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강화 행보를 견제하기 위한 군사행동과 외교적 압박을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미중은 이번 남중국해 판결을 계기로 기존 패권 국가와 신흥 대국은 반드시 충돌한다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더욱 깊이 끌려들어 갈 것으로 보인다.

◇양보할 수 없는 싸움…패권대결의 최대 요충지
남중국해를 둘러싼 미중의 첨예한 대결은 이 지역의 전략적 가치에서 기인한다.

남중국해는 핵심적인 오일 루트이자 세계 해상 물동량의 3분 1이 거쳐 가는 곳이다.

석유, 천연가스의 매장량도 엄청나 '제2의 페르시아만'으로도 불린다.

특히 일본, 한국 등 미국의 주요 동맹국에 의해 태평양 진출이 차단된 중국군 입장에서 남중국해는 핵잠수함 등을 태평양으로 진출시켜 미국을 견제할 수 있는 핵심적인 통로다.

중국이 남중국해 영유권을 '핵심이익'으로 규정해온 배경이다.

미국 입장에서도 남중국해는 포기하기 어려운 전략적 요충지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임기 내내 중국의 대외팽창을 저지하는데 초점이 맞춰진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추진해왔다.

중국은 미국이 일본의 군사적 재무장을 지원하고, 한반도 '사드'(THAAD·미국의 고(高)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추진하는 것 역시 그러한 대중 포위전략의 하나로 해석한다.

중국이 남중국해 군사기지화에 성공하면 대중 포위망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근년들어 급격히 첨예화된 미중의 남중국해 갈등은 경제 주도권 싸움에서 시작된 패권 경쟁이 군사·안보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은 지난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위안화 세계화 등을 통해 미국 주도의 국제금융질서에 균열을 냈고, 올해 초에는 신중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국방개혁안을 발표하며 미국의 군사력에까지도 도전장을 던졌다.

◇中, 대반격 가능성…남중국해 '격랑' 속으로
자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근거를 무력화한 이번 중재결정에 분노하고 있는 중국은 강경대응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한 관측통은 중국이 남중국해 인공섬 매립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반격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남중국해에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지만, 실제 선포 가능성에 대한 관측은 엇갈린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중국의 남중국해에 대한 군사력 증강 가능성이다.

중국군은 이번 중재판결을 앞두고 남중국해 파라셀 군도(중국명 시사<西沙>군도·베트남명 호앙사 군도)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하며 무력시위를 했다.

중국언론들은 중국군이 이번 훈련에서 전략폭격기 훙(轟)-6를 초음속 대함미사일 잉지(鷹擊)-12를 발사하는 훈련도 실시했다고 보도했다.

잉지-12는 둥펑-21D와 함께 '항모킬러'로 불리는 미사일로 중국군이 미군의 항공모함을 타격하는 훈련도 실시했음을 시사한다.

이 훈련은 미군이 '존 C 스테니스'와 '로널드 레이건' 등 항공모함 2척을 남중국해 등에 투입해 공중방어 및 해상정찰 작전을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 전개된 것이다.

이번 중재판결을 계기로 중러의 군사적 협력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최근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전략적 균형을 파괴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양국의 전략적 밀착을 더욱 가속할 것임을 예고했다.

미국은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강화 행보에 맞서 대중 포위 공세를 더욱 끌어올리고 있고,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러시아 간 군사적 대결 위기도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남중국해 갈등이 미중 무력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그러나 이번 판결로 더욱 고조될 미중의 '강 대 강' 대치 국면은 남중국해서의 우발적 충돌의 위험성을 더욱 끌어올리게 될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이 지역의 군사적 긴장은 새로운 군비경쟁을 촉발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미중의 '줄세우기' 본격화되나…사드압박도 강화될 듯
이번 중재 판결로 미중 대결이 첨예화되면 세계의 신냉전 구도는 더욱 뚜렷해질 수 밖에 없다.

'G2'(주요 2개국)의 진영 논리와 양국의 '우군' 확보 경쟁 속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이 받게 되는 선택의 압력도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이번 중재 판결이 자국에 불리하게 나올 것에 대비해 수개월 전부터 국제 여론을 자국에 유리한 쪽으로 조성하기 위한 '우군' 확보 총력전을 전개해왔다.

특히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등 중국의 경제협력이 절실한 국가들을 주로 공략하며 지지 입장을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중국 관영 관찰자망(觀察者網)은 남중국해 분쟁과 관련해 중국 입장을 지지하는 국가가 최소 66개국에 달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외교 소식통들에 따르면 중국정부는 이미 한국정부에도 자국 입장을 지지해달라는 요청을 주중대사관 등 각종 외교채널을 통해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역시 이번 판결이 나오기 전부터 국제규범을 확립해야한다며 한국 등 가까운 동맹국을 향해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입장 표명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소식통은 관련 국가들이 "이번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넘어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판결을 계기로 분쟁의 직접 당사국인 중국과 필리핀이 대화 테이블에 앉을 지도 주목된다.

그동안 중국의 당사국 간 해결 요구를 일축하며 미국과 연대해 적대적 반중 노선을 걸어온 필리핀이 최근 새정부 출범과 함께 입장을 선회, 중국과의 양자 대화 의지를 밝혔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이 이를 순순히 받아줄지는 불투명하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지난 9일 '논평'을 통해 중국은 필리핀이 일방적으로 제기한 중재 사건의 판결을 토대로 필리핀과 협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협상의 문은 열려있지만 중재 판결이 변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양측이 대화 테이블에 앉더라도 중국이 중재 결과를 송두리째 거부하는 상황에서 남중국해 몫을 나누는 데 상당한 시간과 진통이 예상된다.

(베이징·하노이연합뉴스) 이준삼 김문성 특파원 js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