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 고장으로 검문 중 신분증 제시하려다 피격
오바마 美대통령 "우연 아니다…경찰과 커뮤니티 신뢰부족" 개탄

미국 루이지애나 주에 이어 미네소타 주에서 흑인이 경찰 총격으로 숨지면서 경찰의 과잉 공권력 사용과 인종차별적 대응에 관한 논란이 미국 사회에서 더욱 확산하고 있다.

7일(이하 현지시간) 미네소타 주 지역 언론들과 CNN 방송에 따르면 전날 밤 9시께 미니애폴리스 중심가에서 동쪽으로 약 8㎞ 떨어진 세인트 앤서니 시 팰컨 하이츠 지역에서 필랜도 캐스틸(32)이라는 흑인 남성이 교통 검문에서 경찰관이 쏜 총에 맞은 뒤 병원에 옮겨졌으나 결국 숨졌다.

차량에 동승했던 이 남성의 여자친구 다이아몬드 래비시 레이놀즈는 차 안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캐스틸의 모습을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으로 찍어 세상에 알렸다.

총을 겨누고 고함을 지르며 욕설을 퍼붓는 경찰관의 모습도 담긴 이 영상은 소셜 미디어와 언론매체를 통해 급속히 전파됐다.

5일 루이지애나 주 배턴루지의 한 편의점 근처에서 CD를 팔던 흑인 남성 앨턴 스털링(37)이 경관 2명에게 제압되던 과정에서 총에 맞아 숨진 다음 날 이 사건이 발생하면서 미국 흑인과 경찰 간의 갈등에 불이 붙고 있다.

배턴루지 사건 역시 지나가던 행인이 찍은 휴대전화 동영상으로 널리 알려졌다.

미등이 고장 난 차를 타고 가던 캐스틸 일행은 경찰의 정지 지시를 받고 차를 길가 한쪽에 대고 검문에 응하던 중이었다.

그의 여자친구 레이놀즈는 4살 난 딸(4)을 데리고 동승 중이었다.

캐스틸은 차량 밖에 서 있던 경관에게 자신이 총을 소지하고 있음을 알리고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 보여주려던 중 이 경관이 발포한 네 발의 총에 맞아 절명했다.

유족에 따르면 캐스틸은 합법적인 총기 휴대 허가증을 보유하고 있었다.

발포 직전 경찰관은 캐스틸에게 "손을 허공에 들고 있으라", "신분증과 차량등록증을 제시하라"는 '앞뒤가 맞지 않는' 지시를 함께 했다고 레이놀즈는 말했다.

캐스틸의 유족과 친구들은 그가 고교 시절 올 A를 받는 모범생이었으며 졸업 후 교육청 직원으로 취직해 학교 급식 담당관으로 일했다고 설명했다.

전과 조회 결과 캐스틸은 교통 관련 경범죄 경력은 많이 있었으나, 중범죄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사건 직후 수갑이 채워져 연행된 후 밤샘 조사를 받은 레이놀즈는 "경관이 별다른 이유 없이 내 남자 친구를 죽였다"며 울분을 토했다.

레이놀즈는 사건 다음날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경찰이 나중에 부인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페이스북 라이브 영상을 촬영해 세상에 알렸다고 말했다.

캐스틸의 모친인 발레리 캐스틸은 7일 CNN 방송에 출연해 이번 사건이 경찰의 표적 검문으로 일어났다며 "우리 흑인들은 날마다 사냥의 제물이 되고 있다"고 분개하고 "사회 지도자들이 이 사건에 개입해 책임자를 처벌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페이스북으로 공개한 성명에서 "분명한 것은 이런 치명적인 총격 사건은 결코 단순한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라면서 "이는 우리 사법 시스템이 안고 있는 더욱 더 광범위한 도전 과제, 또 오랫동안 사법 시스템에 존재해 온 인종차별의 징후들"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경찰과 그들이 봉사하는 지역 커뮤니티 사이에 만연한 신뢰부족의 결과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마크 데이턴 미네소타 주지사는 "카스틸이 만약 백인이었다면 이런 상황에서 총격을 당해 죽지 않았을 것"이라며 "정의가 실현돼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주정부 당국은 이번 사건에 대해 수사와 조사를 진행 중이며, 사건에 연루된 경관 두 명 중 한 명은 현재 직무정지 처분을 받았다.

당국은 총을 발사한 것으로 알려진 해당 경관을 조사한 후 신원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 경관은 아시아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네소타 지역 언론들은 경찰 총격으로 인한 사망 소식이 알려지면서 약 200명의 시위대가 사건 현장에 모여들었다가 해산했으며, 일부 시위대가 미네소타 주지사 관저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였다고 전했다.

미국 내 최대 흑인 단체인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 미네소타 지부장인 네키마 레비 파운즈는 "살인을 정당화하는 법이나 정책에 정말 신물이 난다"면서 "도저히 이런 일을 더는 용납할 수 없고, 정말 '이만하면 됐다'"면서 미국 사법 시스템의 맹점을 강력하게 규탄했다.

일간지 워싱턴포스트 집계에 따르면 캐스틸은 올해 경찰의 총격에 숨진 506번째 민간인이며 123번째 흑인이다.

미니애폴리스 지역에선 지난해 11월에도 비무장 흑인 청년 자마르 클락이 경찰의 무차별 총격에 목숨을 잃은 뒤 거센 시위가 일어났다.

미네소타 일간지 스타 트리뷴에 따르면, 2000년 이래 미네소타 주에서 최소 143명이 경관의 총격에 살해됐지만, 경관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미국 연방 법무부는 이번 사건을 인지하고 상황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6일 루이지애나 주 배턴루지에서 발생한 흑인 피격 사망 사건을 직접 수사 중이다.

사건에 연루된 두 백인 경관의 민권법 위반 혐의 파악이 수사의 핵심이다.

미네소타 주와 마찬가지로 두 사건 모두 사망자가 흑인이고, 경찰의 총기 사용이 적절했는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 동영상으로 사건 당시 정황이 비교적 생생하게 드러났다는 점 때문에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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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 연합뉴스) 임화섭 장현구 특파원 solatido@yna.co.kr, cany990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