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정장 입고 고무장갑 낀 여성들…남성이 만든 난장판 치울 리더십"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영국의 테리사 메이, 유엔 사무총장 여성 후보들.
지구촌이 여성 리더십 전성시대를 맞았다.

세계 주요 강대국에서 여성이 정권을 장악했거나 집권에 야심차게 도전하고 있다.

미국 민주당의 클린턴은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를 앞서고 있다.

게다가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클린턴의 유력한 부통령 러닝메이트 중 하나인 터라 미국 대선에서 '여-여(女-女) 복식조'가 꾸려질 가능성도 있다.

영국에서는 유럽연합(EU) 탈퇴 결정 이후 후폭풍을 수습할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후임 자리를 놓고 두 여성 후보가 격돌했다.

5일(현지시간) 영국 차기 총리가 될 보수당 대표 경선 1차 투표에서 메이가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역시 여성인 앤드리아 레드섬이 2위로 메이를 뒤따른 만큼 '제2의 대처', 즉 마거릿 대처 이후 26년 만의 여성 총리가 탄생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보수당과 함께 영국 양당을 구성하는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의 입지가 흔들린 가운데 앤젤라 이글 의원이 대표직 도전을 선언했고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인 니컬라 스터전 역시 여성이다.

현재 유럽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로 꼽히는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미 지난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유력 매체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을 석권했다.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이탈)와 난민 위기 앞의 유럽을 통합으로 이끈 메르켈은 성패에 대한 평가는 후대로 넘기더라도 유럽대륙에 지워지지 않을 흐름을 만든 것은 분명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럽에는 베아타 쉬드워 폴란드 총리, 에르나 솔베르그 노르웨이 총리 등 여성 국가정상이 여럿이다.

또한 반기문 사무총장의 뒤를 이어 유엔을 이끌 차기 사무총장 선거전에서도 출사표를 던진 11명 가운데 여성이 5명이다.

헬렌 클라크 전 뉴질랜드 총리, 베스나 푸시치 크로아티아 부총리,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 나탈리아 게르만 몰도바 부총리, 수사나 말코라 아르헨티나 외교장관이 경쟁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5일 이들 여성 지도자의 동시다발적 득세를 "남성들이 만들어놓은 정치적 잿더미에서 여성들이 떠오르고 있다"고 풀이했다.

브렉시트 결정과 그에 따른 정치적 혼란과 같이 나라에 심란한 일이 있을 때 여성 지도자들에게 의지해 해결을 바라는 정서가 커진다는 것이다.

마라 델리우스 독일 디벨트 에디터는 이런 현상을 "남자들이 어질러놓은 것들을 치우러 온 새로운 여성민주주의(Femokratie)"라고 부르면서 이런 여성 지도자들을 "바지 정장을 입고 고무장갑을 낀 포스트모던 엘렉트라들"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상원의 앤 젠킨 케닝턴 남작부인도 "나라 전체에 '유모, 얼른 와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주세요'라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며 "혼란기에는 여성이 더 현실적이 된다.

더 협력적이고 테이블에서 여러 목소리를 들으려 하며 즉각적으로 공격적인 접근은 덜 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물론 여성이라는 하나의 공통점으로 모든 정치인이 묶일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여성 정치인이라고 하더라도 정치 스타일은 저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스터전 수반은 자신의 트위터에 "메이와 레드섬은 모두 여성이지만, 꽤 다른 관점을 가진다"는 코멘트를 리트윗하면서 "여성을 향한 태도는 먼 길을 걸어왔지만, 앞으로도 갈 길은 여전히 멀다"고 썼다.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cheror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