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통합의 헌법적 기본권인 다른 회원국 체류권
반이민 정서 팽배한 영국에선 정권획득 관건으로 부상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과정에서 회원국 국민이 다른 회원국에서 자유롭게 거주할 권리가 핵심쟁점으로 확인됐다.

29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막을 내린 EU 정상회의에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EU 시민권자(회원국 국민)들의 영국 이주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결정의 동력이었다며 EU의 이민정책을 비판했다.

이에 대해 독일, 프랑스 등 주요 회원국은 EU 시민권자들의 자유로운 이주와 노동은 반드시 보장할 기본권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EU 시민권자들의 이주 자유는 EU의 헌법으로 불리는 리스본조약 21조(EU의 기능 항목)에 명시돼 있다.

나아가 EU는 부속 시민권 지침을 통해 EU 회원국의 국민이 다른 회원국에서 어떤 권리를 지닐 수 있는지 규정하고 있다.

지침에 따르면 EU 시민권자는 유효한 신분증이나 여권만 지닌다면 다른 아무 조건이 없이 3개월까지 다른 회원국에 거주할 수 있다.

다른 회원국에서 3개월 이상 거주하려는 EU 시민권자는 근로자, 학생 등과 같은 특정 조건을 충족해야 하고 특정한 형식적 행정절차를 거쳐야 할 수 있다.

합법적으로 5년 이상을 계속 특정 회원국에서 보낸 EU 시민권자는 해당 국가의 영주권을 획득한다.

임금노동, 자영업, 학업 등을 이유로 이주한 EU 시민권자들의 가족들도 특정 조건만 충족하면 함께 따라 들어와 거주할 권리를 지닌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영국 내에는 EU 시민권자이자 다른 회원국 국민이 300만명 가까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저학력층, 노년층, 빈곤한 지역의 주민들은 이 같은 대규모 이민자들 탓에 고용과 복지가 위협받고 있다며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졌다.

영국 극우정당인 독립당의 나이절 패라지 대표는 전날 CNN 인터뷰에서 "영국의 EU 잔류(자유이동권 보장)는 미국이 멕시코와 국경을 트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캐머런 총리는 2010년 총선 때 이민자의 수를 연간 10만명 이하로 감축하겠다고 공언했으나 작년에 이민자 수는 30만명을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불만과 공약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한 불신이 어우러져 이민문제는 영국 정치권에서 정권획득의 관건으로 자리잡은 사실이 국민투표로 확인됐다.

리스본 조약과 세부 지침에 따라 영국인 130만명도 사업, 유학, 노동 등의 이유로 다른 회원국에 체류하고 있다.

브렉시트 진영의 리더이자 차기 총리 후보인 보리스 존슨 전 런던 시장은 최근 언론 기고문에서 영국인들의 다른 회원국 자유이동을 보장하면서 다른 회원국들의 영국 유입은 규제하겠다는 비전을 밝혔다.

이 또한 영국이 브렉시트 후에 유럽 단일시장도 온전히 이용하겠다는 태도와 더불어 이기적이라는 비판의 근거가 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독일 연방의회 연설에서 영국의 '체리 피킹'(좋은 과실 선별해 따먹기·cherry picking)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jangj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