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EU 정서 확산·남유럽 소외 등 해결 과제…연쇄 탈퇴 막아야

유럽연합(EU)이 창설 이후 최대 위기를 맞이했다.

EU 주축 국가인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서 EU가 통합의 대장정을 멈추고 붕괴의 길로 들어선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그동안 통합의 페달을 힘차게 밟아오던 EU가 최근 수년간 재정·금융 위기와 난민유입 사태 등으로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주요 국가들의 탈퇴 움직임으로 전면적인 위기에 봉착했다.

지난해 파산 위기에 직면했던 그리스의 EU 탈퇴(그렉시트) 우려가 제기된 데 이어 올해 브렉시트 위기가 고조됨으로써 EU의 구심력이 크게 흔들렸다.

2차 대전 이후 최악의 난민 유입사태에 직면한 유럽에서 반(反)이민 정서가 확산하고 난민 수용 부담을 나누어 질 것을 촉구하는 EU에 대한 반감도 커졌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우려와 예상을 깨고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가결됨으로써 탈퇴 도미노가 우려되고 있다.

벌써부터 네덜란드와 프랑스의 극우정당들은 영국과 같은 국민투표를 요구하고 나섰다.

네덜란드 극우정당 자유당(PVV)의 헤이르트 빌더스 당수는 내년 3월 총선에서 자신이 승리해 총리에 오르면 '넥시트'(네덜란드의 EU 탈퇴)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프랑스 극우정당인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대표는 영국의 선택을 환영하면서 프랑스에서도 EU 탈퇴 국민투표를 시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영국에 이어 덴마크와 체코 등도 EU 탈퇴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덴마크는 영국과 마찬가지로 유로존에 편입되지 않은 국가며, EU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민족주의 세력이 득세하는 체코에서도 지난 2월 보후슬라프 소보트카 체코 총리가 직접 브렉시트가 이뤄지면 체코도 탈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소보트카 총리는 "영국이 EU를 떠나면 체코에서도 수년 뒤 EU를 떠나는 문제로 논쟁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EU는 브렉시트를 막기 위해 영국의 EU 내 '특별 지위'를 인정하는 등 총력을 기울였으나 결국 실패했다.

영국이 요구한 EU 개혁을 대부분 수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 국민은 이를 거부한 것이다.

이에 따라 EU 통합의 속도와 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전문가들은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와 관계없이 EU의 개혁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EU가 통합을 위해 숨가쁘게 달려오는 동안 EU 28개 회원국 국민의 EU에 대한 인식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재정, 금융 위기가 장기화하면서 유럽인들의 EU에 대한 신뢰도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다.

유럽 경제의 장기 불황은 금융 위기를 겪은 남유럽 국가들과 비교적 건실한 경제를 유지하고 있는 독일 등 북유럽 국가들 간의 소위 '남북 격차'를 벌리고 있다.

또한 위기가 계속되고 있는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의 소외감이 심각해지고 있다.

이 같은 경제 통합 과정에서 발생한 반 EU 정서와 소외를 감싸 안을 수 있는 통합 이념과 방식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유럽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독일 등 돈줄을 쥔 국가들이 그리스 등 구제금융 국가에 대해 긴축을 요구하면서 위기국가 국민의 반EU 정서를 촉발했다.

유로화 통합 체계는 여전히 불안하고 독일이 주도하는 경제 정책은 그리스 등 남부 유럽의 부채 삭감에 10년을 소비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남유럽 국가들은 여전히 경제 침체로 고통받고 있다.

엔리코 레타 전 이탈리아 총리는 "우리는 현 상태를 지속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럽개혁센터의 사이먼 틸포드는 EU의 정책 실패가 EU 이탈을 원하는 일부 세력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도움을 줘왔다고 분석했다.

그 동안 EU 내에서는 EU 가입으로 경제위기가 생기면 자국 통화의 환율 조정이나 성장 촉진을 위한 적자 재정 등을 구사하는 데 제한이 많아 논란을 빚었다.

독일 등 북부 유럽 선진국들이 빚더미에 오른 남부 유럽을 구제하는 행태가 반복돼 유로존이 동등한 파트너가 아닌 채무자와 채권자 사이로 변질됐다.

이런 상황에서 다수의 전문가들은 EU 통합의 이익을 독일 등 강국들이 과점하는 체제를 개혁하고 통합으로 인한 피해를 구제할 수 있는 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부터 걷잡을 수 없는 난민유입 사태에 직면한 유럽 각국은 속속 국경통제를 시행했다.

이에 따라 EU 역내 자유통행을 보장하는 솅겐조약 체제가 붕괴 위기에 처했다.

난민 분산 수용을 둘러싸고 서유럽과 동유럽이 첨예한 갈등 양상을 빚고 있으며 이는 EU 통합과 연대의 시험대가 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난민 도착지인 그리스, 이탈리아, 헝가리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EU 회원국들이 형편에 따라 골고루 난민을 할당해서 받아들이는 방안을 제의했으나 동유럽 국가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합의에 난항을 겪고 있다.

지난 4월 네덜란드 국민투표에서 EU-우크라이나 협력협정에 네덜란드 유권자 대다수가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는 EU의 통합정책에 대해 개별 회원국이 반기를 든 사례로 향후 EU의 동유럽 확대 정책에 제동을 걸 것으로 전망된다.

(브뤼셀연합뉴스) 송병승 특파원 songb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