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심 결정하는 최대 이슈로 이민과 경제 꼽혀
찬성측 '반(反)이민' 공략 주효…반대측 '경제 충격' 공략 고전

"영국에 들어오는 이민자수 33%, 영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28%"
여론조사업체 입소스모리가 1천257명을 대상으로 지난 11~13일(현지시간) 벌여 16일 공개한 전화조사 결과에서 "찬반을 결정하는데 가장 중요한 이슈는 어떤 것인가"라고 물은 질문의 결과다.

오는 23일 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놓고 영국민이 이민이냐 경제냐의 선택을 하고 있다.

질문에 대한 다른 응답들은 ▲독자적 법규 제정 능력(12%) ▲공공복지/주택에 미치는 영향(11%) ▲일자리에 대한 영향(8%) ▲복지체계에 대한 EU 이민의 비용(7%) ▲EU 회원국들과의 무역(6%) ▲EU로 여행(5%) 등이었다.

EU로 여행을 빼면 모두 이민이나 경제와 연관된 이슈들이다.

공공복지/주택에 미치는 영향은 브렉시트를 찬성하는 이들에겐 이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의 다른 표현과 같다.

학교가 부족하고 국민건강서비스(NHS)를 받으려면 장기간 대기해야 하고, 주택 난으로 집값이 치솟은 것은 이민자 유입 때문이라고 찬성 진영은 주장해왔다.

EU를 떠나자는 이들은 지금의 문제를, 남아야 한다는 이들은 탈퇴 시 벌어질 내일의 문제를 중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영국에서 EU 회의론은 뿌리깊은 '역사'를 자랑한다.

영국 유력 싱크탱크 채텀하우스는 '영국의 EU 논쟁 50년 역사'에서 찬반 양측의 주장들이 그동안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살펴볼 것을 권하면서 과거 강연과 토론을 담은 영상과 녹취록을 올려놨다.

여기에는 "이민은 수백년에 걸쳐 있었다.

아마도 우리는 모두 이민자들일 것"이라고 16년 전 한 강연자는 얘기했다.

브렉시트 투표를 앞둔 지금 이민은 최대 이슈로 부상했다.

EU가 동유럽국들을 새 회원으로 받아들인 2004년 이후 동유럽 이민자들이 영국에 몰려들었다.

이들의 물결이 잦아들 무렵 이번에는 남유럽 출신 이민이 부쩍 늘어났다.

그리스 위기 여파로 경제가 어려워진 유로존 시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경제가 상대적으로 나은 비(非)유로존 영국에 온 것이다.

브렉시트 지지자인 이언 덩컨 스미스 전 고용연금장관은 "통제되지 않은 이민의 결과를 체감하는 건 저임금을 받거나 일자리를 잃은 영국인들"이라며 "이들이 일자리를 위해 해외에서 온 수백만명과의 경쟁을 강요받고, 임금 하락 압력을 받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달 26일 발표된 순이민자 통계는 다소 열세이던 브렉시트 찬성론에 동력을 제공했다.

지난해 EU 출신 순이민자(유입-유출)가 18만4천명이 증가한 것으로 발표됐다.

비(非) EU 출신을 포함해 전체 순이민자수가 2만명이 증가한 33만3천명으로, 1975년 이 통계를 작성한 이래 두 번째로 많았다.

전체 취업자수(3천150만명) 가운데 520만명이 영국 이외 출신이고, 이중 EU 출신이 220만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순이민자수를 "10여만명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약속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이동의 자유'를 핵심 가치로 둔 EU에서 떠나는 길만이 유일한 해법이라는 찬성 측 주장이 힘을 얻었다.

반(反)이민 정서의 밑바닥에는 '정체성' 우려도 자리 잡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분석했다.

지역사회에 이민자들이 늘어나면서 '영국의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는 불만이다.

반(反)EU 정당인 영국독립당(UKIP) 나이절 파라지 대표는 TV에 출연해 "경제보다 삶에 더 많은 의미가 있다는 게 진실"이라며 "평범한 괜찮은 영국인들이 최근 몇 년간 형편없는 시간을 보내왔다"고 이민에 대한 불만을 자극했다.

반면 브렉시트 반대 진영에서는 '경제에 대한 충격'을 공략 포인트로 삼는 전략을 취해왔다.

EU를 떠나면 5억 인구의 단일 시장인 EU에 지금 같은 조건으로 상품이나 서비스를 팔 수 없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2년 내 일자리가 50만개 사라지고, 국내총생산(GDP)이 3.6% 위축되고, 가구당 연간 4천300파운드(약 720만원)를 잃게 될 것이라는 정부 추정 수치를 제시했다.

또 파운드화가 급락할 것이라는 경고도 내놓고 있다.

중립적인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이 같은 견해를 공개적으로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반대 진영의 경제 '충격' 호소는 유권자들에게서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여론조사업체인 입소스모리가 조사한 결과, 가구당 4천300파운드를 잃게 될 것이라는 재무부 추정치에 겨우 17%만 동의했다.

70%는 잘못된 계산이라고 여겼다.

찬반 캠프 양측 모두 상대 측 분석과 주장들을 사실과 다른 '거짓말'이나 '과장'이라고 맞서고 있지만, 반대 캠프 측의 얘기들은 먹혀들지 않는 모습이다.

브렉시트 찬성 진영은 영국이 세계 5위의 경제 대국인 만큼 EU를 떠나더라도 EU 회원국들이 '큰 시장'인 영국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반박한다.

독일 정부가 자국 자동차수출의 20%가 향하는 영국에 관세 10%를 매기는 건 자국 경제에 타격을 자초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예를 든다.

막판 유권자 표심이 이민과 경제 중 어디에 방점을 두느냐에 따라 영국의 EU 탈퇴 여부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런던연합뉴스) 황정우 특파원 jungw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