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반도핑기구 "러시아 정부·선수가 조직적 방해" 보고서

무장한 러시아 보안국 요원이 도핑 검사관을 협박하고 세관에서는 샘플에 손을 대는 등 러시아 정부가 조직적으로 자국 선수의 약물 검사를 방해했다는 세계반도핑기구(WADA)의 보고서가 나왔다.

보고서 내용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스포츠 공정성을 담보하려는 보루인 도핑 테스트 제도의 근간을 특정 국가가 훼손했다는 점에서 러시아는 국제사회의 비판을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15일(현지시간) AP통신, 영국 BBC 방송 등에 따르면 WADA는 러시아 육상 선수들의 리우 올림픽 출전 여부가 가려지기 이틀 전인 이날 새 보고서를 통해 러시아 선수들과 기관들이 끊임없이 약물 검사를 방해하고 속였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도핑 검사관들이 러시아 군사 시설이 있는 폐쇄된 도시에 들어가 있는 선수들을 찾으려 할 때, 무장한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요원들은 검사관들에게 추방당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WADA를 필두로 한 전 세계의 도핑방지기구와 체육단체들은 도핑 테스트를 회피하거나 이를 돕는 일 자체를 금지약물 복용과 같은 위반으로 보고 제재하고 있다.

보고서는 채취한 샘플을 검사하려고 외국으로 보낼 때도 러시아 세관이 샘플이 든 짐에 함부로 손을 대기까지 했다고 지적했다.

이 또한 WADA뿐만 아니라 각종 스포츠 국제기구의 관리 규정이 엄격히 금지하는 행위다.

샘플 조사의 투명성이 훼손되는 이 같은 행위 때문에 나중에 선수들이 법정에서 샘플이 잘못 다뤄졌다고 주장하면서 제재 절차가 어그러질 수 있다.

보고서는 국내 대회나 올림픽 대표를 선발하는 대회가 접근이 제한된 도시에서 개최돼 아예 도핑 테스트가 이뤄지지 않은 사례, 경기가 열리는 도시나 장소가 검사관에게 통보되지 않은 사례도 있었다고 밝혔다.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역도 러시아선수권 대회와 체첸공화국 수도 그로즈니에서 열린 그레코로만 레슬링 러시아선수권 대회 때는 현지 당국이 보안상의 이유를 들어 검사관들을 도시로 들여 보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선수들이 경기에서 약물 검사 통보를 받으면 자신이 있는 곳을 틀리게 알려주거나 테스트를 회피한 경우도 있었다.

한 선수는 경기장에서 검사관을 마주치자 달아났으며 다른 선수는 아예 경기 도중 경기장을 빠져나가기도 했다.

한 여성 선수는 가짜 소변 샘플을 제출하려다 실패하자 검사관을 매수하려 했지만, 결국 진짜 소변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다.

심지어 러시아 레슬링 선수권대회 기간에 선수들이 테스트가 이뤄지는 실험실을 자유롭게 방문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11월부터 이달 초까지 요구한 약물 검사 중 736건은 거부당하거나 취소됐고, 111건은 선수의 행방을 확인하지 못했으며, 52건은 양성 반응으로 나왔다.

도핑 테스트에서 양성 반응을 보인 선수 52명 가운데 49명의 혈액에서는 멜도니움 성분이 검출됐고, 1명에게선 멜도니움과 투아미노헵탄(tuaminoheptane)이 함께 검출됐으며, 다른 2명에게선 스트로이드제인 난드롤론(Nandrolone)이 발견됐다.

멜도니움은 올해 1월 1일부터 WADA에 의해 새롭게 금지 약물로 등록됐다.

러시아 여자 테니스의 간판스타 마리야 샤라포바가 지난 3월 기자회견을 열고 올해 1월 호주오픈 대회 도핑테스트에서 양성반응이 나왔다고 실토했던 약물이다.

샤라포바는 멜도니움 복용으로 국제테니스연맹(ITF)으로부터 2년간 자격정지 처분을 받고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재심을 요청한 상태다.

WADA는 지난해 10월 러시아 당국이 육상 선수들의 도핑에 조직적으로 관여했다고 혔으며 지난달에는 러시아 당국 관계자가 2014년 소치 올림픽에서 러시아 선수 15명이 금지 약물을 복용하고 메달을 땄다고 폭로하는 등 추문이 이어졌다.

WADA의 발표 이후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모든 러시아 선수의 국제대회 출전을 잠정적으로 금지했으며 오는 18일 이사회를 열고 러시아 육상 선수들의 리우 올림픽 출전 여부를 결정한다.

비탈리 무트코 러시아 체육부 장관은 이날 러시아 선수들의 출전 자격이 회복되지 않으면 법적 대응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인테르팍스 통신은 전했다.

러시아는 자국에서 개최된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때 정보당국 관계자가 선수의 소변 시료를 몰래 바꿔치기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미국으로 도피한 러시아 반도핑기구의 모스크바 실험소장이던 그리고리 로드첸코프가 러시아 정부의 조직적 도핑으로 메달을 딴 자국 선수가 최소 15명에 달한다고 지난달 폭로했다.

(서울·모스크바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유철종 특파원 mih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