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막 훼손에 집단행동까지…"다양성 수용하는 사회 포용력 키워 공존 방법 익혀야"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 총기 난사의 원인으로 동성애 혐오(호모포비아)가 거론되면서 국내 사정에도 관심이 쏠린다.

총기 난사 용의자 오마르 마틴(29)이 성 소수자를 차별하는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에 동조했고, 동성 간 애정행각에 화를 냈다는 증언을 미국 경찰이 확보했다.

국내에서도 최근 동성애 혐오 현상이 강하게 표출됐다.

대학가에서 성 소수자 입학 환영 현수막이 훼손되고 게시물이 없어졌다.

서울 도심에서는 종교인들이 성 소수자 축제를 방해하거나 맞불 집회를 열기도 했다.

동성애는 음란하다거나 종교 가르침에 어긋난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성 소수자 혐오는 일종의 증오범죄인 만큼 우리 사회가 포용력을 발휘해 공존 노력을 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제언했다.

◇ '퀴어 축제' 반대집회 등 혐오 양상 점차 수면위로
국내 동성애자 혐오현상은 매년 6월 서울 도심에서 열리는 퀴어 퍼레이드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성 소수자 축제인 이 행사 때마다 일부 보수단체와 기독교 단체들은 노골적인 거부감을 드러내며 맞불 집회를 열었다.

동성애는 음란하다거나 기독교 가르침에 어긋난다는 등 이유로 혐오를 표출한다.

다소 과격하거나 폭력적인 모습을 종종 띠기도 한다.

11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17회 퀴어(Queer)문화축제에서도 갈등이 빚어졌다.

역대 최대(주최측 추산 5만여명. 경찰 추산 1만여명) 인원이 운집해 성 소수자 인권을 상징하는 무지개 부채를 흔들며 도심 거리를 행진했다.

같은 시각 서울광장 건너편인 대한문 앞에서는 개신교 단체 등이 퀴어축제 반대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주여"를 외치며 기도하거나 찬송가를 불렀다.

퀴어 축제가 열리는 과정도 순탄하지 않았다.

한 시민은 축제 조직위원회를 상대로 '공연 음란행위 가처분' 신청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가 기각됐다.

퀴어축제를 둘러싼 갈등은 최근 수년간 반복됐으며 갈수록 악화하는 양상을 띤다.

2014년에는 보수·기독교단체 수백 명이 퍼레이드 차량을 가로막는 등 집단행동에 나섰다.

행진이 파행을 겪다가 경찰이 행사 반대 측 인사들을 연행한 끝에 재개됐다.

서울시가 인권헌장에 성 소수자 차별금지 조항을 담으려 했지만, 결국 성사되지 않았다.

반대 세력이 토론회와 공청회 장소에 난입해 극렬히 반대한 탓이다.

성 소수자를 둘러싼 갈등은 대학 캠퍼스에서도 공공연하게 나타난다.

올해 3월 서울대 교정에 걸린 성 소수자 입학생 환영 현수막이 훼손됐다.

다른 대학에서도 성 소수자 게시물이 없어지거나 찢기는 일이 최근 수년간 발생했다.

소수자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반영해 2014년 고려대 총학생회가 회칙에 성 정체성 차별금지를 명문화하도록 했다.

이때에도 학내 여론은 엇갈렸다.

◇ 혐오·갈등 풀려면 사회 다양성과 포용력 키워야
우리나라는 미국처럼 동성애 혐오가 총기 난사 같은 극단적 폭력으로 치닫지는 않지만 조짐은 예사롭지 않다.

단순히 반대하는 수준을 넘어 물리적 충돌을 빚을 단계로 악화하고 있다.

동성애를 둘러싼 갈등이 우려할 수준이므로 우리 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풀 때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중앙대 이병훈 교수(사회학)는 "우리나라 전통문화 관점에서는 동성애를 수용하기 힘든 측면은 있지만, 보수단체가 퀴어 축제 반대집회를 여는 것은 다양함을 수용하는 태도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자신의 가치와 맞지 않으면 무조건 틀렸다는 태도는 충돌이나 탄압, 학살을 불러올 뿐"이라면서 "성 소수자 혐오 문제를 풀려면 사회 포용력을 키워 서로 다양함을 인정하고 공존하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고 제안했다.

같은 대학 이나영(사회학) 교수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고 남을 혐오하거나 차별하는 것은 굉장히 문제"라면서 "혐오를 생산하는 극단주의자들이 늘어나지 않도록 사회가 나서 세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혐오와 차별을 막는데 국가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 교수는 "어버이연합이나 극우 기독교 단체 등 보수 세력이 혐오를 표출한 데는 정권 책임도 어느 정도 있다"면서 "이제는 평등한 국가 지향을 위한 차별금지법 도입을 선언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다양성을 부인하는 것은 일종의 범죄라는 평가도 있다.

성 소수자 단체인 친구사이의 이종걸 사무국장은 "올랜도 사건이나 퀴어축제 관련 갈등을 단순히 소수자와 반대 세력 간 충돌로 보기보다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차별을 조장하는 이들의 증오 또는 혐오범죄로 바라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서울연합뉴스) 설승은 채새롬 기자 se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