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P "외국 자산 보유에 납세 의무, 재외거주자에 부담 "

시민권을 포기하는 미국인이 늘어나는 현상은 공화당의 유력한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아닌 세금 부담 때문이라고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 국세청(IRS)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미국 시민권을 포기한 국외 거주자는 1천158명으로 8년 전인 2008년 같은 기간(123명)보다 약 10배 많았다.

작년 한 해 동안에는 4천279명이 미국 시민권을 포기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 시민권 포기 현상은 트럼프 기피 현상과 맞물린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미국 대선 경선 과정에서 막말을 많이 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면 미국을 떠나고 싶다는 사람들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코미디언 존 스튜어트, 배우 우피 골드버그, 레나 던햄 등 유명인들은 트럼프가 백악관에 입성하면 미국을 떠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지난 3월 1일 치러진 '슈퍼 화요일' 경선에서 트럼프가 압승하자 인터넷에서 미국민의 캐나다 이주 문의가 급증했다.

구글에서 '캐나다로 이주하는 방법' 검색 횟수가 대폭 늘어나는 등 캐나다 이민 관련 내용 검색이 크게 늘었다.

트럼프와 시민권 포기 급증이 강한 연관성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미국 시민권자에게 해외 재산 신고 의무를 부과하고 신고하지 않으면 벌금을 내도록 한 제도 시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WP는 설명했다.

미국은 2010년 외국 계좌를 통한 역외 탈세를 방지하려는 목적으로 해외금융계좌신고법(FACTA)을 만들었다.

이 법에 따라 외국에 자산을 보유한 미국 시민권자에게 납세 의무가 생겼다.

세금을 내지 않으면 최대 10만 달러(약 1억2천만 원) 또는 계좌 잔고 금액의 절반을 벌금으로 물릴 수 있게 했다.

국제 조세 변호사인 앤드루 미첼은 자신의 고객인 재외 미국인들이 '국세청 때문에 파산하겠다'는 우는소리를 한다며 "이들은 국세청과 엮이지 않으려 하고 결국 미국 시민권 포기를 원한다"고 WP에 전했다.

미첼 변호사는 새로운 납세 제도에 불만을 토로하는 재외 미국인 상당수는 은퇴 후 외국에서 생활하는 중산층으로 그들이 사는 나라에서 성실하게 세금을 냈다고 설명했다.

외국에 사는 자국민에게 세금을 물리는 나라는 미국과 아프리카 북동부에 있는 에리트레아 두 곳뿐이다.

미첼 변호사는 또 미국 시민권이 수십만 달러를 내고 유지할 만큼 가치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보리스 존슨 전 영국 런던시장은 개인 소득세 문제로 IRS와 분쟁을 벌이고서 작년 초 미국 시민권을 포기했다.

브라질에서 태어난 페이스북 공동 창립자인 에두아르도 새버린도 2012년 미국 시민권을 포기했다.

시민권 포기가 급증한 시점도 '트럼프 무관론'을 뒷받침한다.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는 국외 거주자는 2008년부터 꾸준히 늘다가 2013년을 기점으로 급증하기 시작했다.

WP는 "2013년부터 시민권 포기 사례가 급증한 것은 '트럼프 책임론'을 약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대선 경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트럼프가 주목받은 시점이 지난해부터였기 때문이다.

(서울연합뉴스) 김아람 기자 ric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