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우레시피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사라 리(왼쪽)와 크리스틴 장.jpg
두 사람이 창업을 결심한 것은 지난 2014년 10월이었다. 뉴욕 맨해튼의 한 아파트에서 한국산 시트마스크로 얼굴에 팩을 하던 중에 이뤄졌다. “이걸로 미국서 사고 한 번 쳐볼까?”

10년 넘게 프랑스 화장품회사 로레알을 다니면서 한국 화장품의 성공 가능성을 확신하던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의기투합했다.

“사업이 그렇게 호락호락할 줄 아느냐. 잘 나가는 회사에 그대로 붙어 있으라”는 부모님과 주변의 반대를 뿌리치고 미련없이 사표를 던졌다. 이렇게 사라 리(한국명 이승현)와 크리스틴 장(한국명 장 미), 2명의 겁없는 30대 초반의 젊은 여성들이 독립을 선언했다.

각자 2만5000달러를 낸 5만 달러로 맨해튼 첼시에 사무실을 차리고 ‘글로우 레시피(Glow Recipe)’라는 간판을 걸었다. 이 대표는 “빛이 나는 피부, 바로 K뷰티를 알릴 수 있는 정확한 단어”라고 말했다.

이 대표가 한국화장품에 ‘꽂힌’ 것은 2008년 로레알 한국에서 미국법인으로 발령을 받으면서였다.

“한국서 인기있는 화장품인데 정작 로레알이나 랑콤 등 글로벌 브랜드에서는 아예 품목조차 없는 경우가 많았죠.” 그는 한국으로 출장을 다녀올 때 마다 여행용 트렁크에 한가득 한국 화장품을 채워서 가져왔다.

미국 직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로레알의 신제품중 K뷰티에서 힌트를 얻은 경우도 많았다. 쿠션 콤팩트, 시트마스크, 에센스는 미국시장에는 없는 제품 카테고리였다.

이 대표가 K뷰티로 미국서 승부를 걸겠다고 결심한데는 장 대표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두 사람은 2004년 로레알 코리아에서 처음 만났다. 8000명의 로레알 미국법인 직원중 한국 사람은 이들 두 명이 전부였다.

“아까웠죠. 한국 화장품은 품질도 좋고, 기술력도 뛰어나 시장을 앞서가고 있는데 저렴한 프로모션에 깜찍한 이미지 중심으로 가는게 속상했죠.”

두 사람의 머릿속에 든 생각이었다. 이렇게 해서 “미국서 제대로 된 K뷰티의 이미지를 만들어보자”는 구체적인 목표가 생겼다.

두 사람이 선택한 비즈니스 모델은 블로그와 온라인쇼핑을 결합시킨 것이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돈이 될만한 화장품을 수입해 마진을 얹어서 전자상거래회사인 아마존을 통해 뿌리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그러나 시간이 걸리더라도 글로우 레시피라는 독자적인 브랜드를 꾸려나가기로 했다. 아마존에 끌려가는 순간 가격에 대한 통제나 고객정보에 대한 관리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K뷰티는 제품 못지 않게 콘텐츠가 핵심”이라며 “단순히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한국 화장품을 이용하는지를 먼저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도 “K뷰티는 제품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사용법에 대한 교육이 중요하다”며 “그래야 사용자 저변을 넓혀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작은 험난했다. 블로그에 동영상으로 화장품 사용법을 직접 시연해 올리고, 제품 주문을 받아서 밤 12시까지 포장을 직접하는 고단한 시간이 수개월간 계속됐다.

동시에 한국 화장품의 미국 현지화 사업도 맡았다. LG생활건강의 브랜드 ‘빌리프’가 화장품 판매체인인 세포라에 입점을 하게 되면서 런칭과 비즈니스 전략을 총괄했다. 최근에는 세포라에 글로우 레시피의 독점 브랜드들을 성황리에 입점시키면서 K뷰티를 주류 시장에 런칭하는 주역으로 활약하고 있다.

결정적인 성공의 계기는 2015년 1월 미국 ABC방송의 투자 유치 오디션 프로그램인 ‘샤크 탱크’에 출연하면서 만들어졌다. 억만장자들을 상대로 프리젠테이션을 해서 투자를 유치하는 이 프로그램에서 수백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출연한 두 사람은 이들이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한국 화장품의 우수성을 설명했다. 이들 중 한 명이 “글로우 레시피가 미국서 K뷰티의 열풍을 이끌 것”이라며 투자를 결정했다.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기회였죠. 방송이 나가자마자 사이트가 바로 다운됐고, 접속건수가 바로 수십만건까지 올라갔죠.”

이후 구글에서 ‘글로우’라는 단어를 치면 레시피라는 연관어가 바로 뜰 정도로 인지도가 올라갔다. 20대 위주의 고객은 평균 30~40대로 올라갔다. 뉴욕과 로스엔젤레스 등 대도시에 치중됐던 구매층은 텍사스, 플로리다, 네브라스카까지 다양해졌다. 최근에는 캐나다, 멕시코, 동남아시아에서도 주문이 들어온다. 그만큼 다양한 사람이 글로우레시피를 통해 K뷰티를 접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두 사람은 미국서 ‘먹힐만한’ 제품은 직접 고른다. 대신 조건은 까다롭다. 첫번째 성분이다. 한국서 인기있는 제품이더라도 파라벤 등 인공 방부제나 인공색소나 향료가 많은 제품은 걸러낸다. 천연성분 위주로 구성한다. 이 대표는 “한국제품을 처음 접할 때 깔끔하고 좋은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다음은 패널 테스트다. 다양한 인종과 연령, 피부타입별로 20명을 선별해 최소 2주간 직접 사용하도록 한다. 부작용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가 최고경영자(CEO)와의 면담이다. 장 대표는 “단순히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의 경우미국지사 역할까지 하는 만큼 CEO가 어떤 비전과 제품 철학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업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글로우 레시피가 단순히 한국 화장품이 좋다는 선전만 하지 않고 한국여성들의 화장품 사용습관에 대해 스토리텔링을 해서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이 대표는 “고객들이 한국 제품들의 뷰티 철학에 매료 및 동화가 되고 있고, 동시에 글로우 레시피의 컨텐츠와 교육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며 “대신 긴장하면서 사이트에서 새로운 정보를 얻어 갈 수 있도록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항상 최신 트렌드를 소개하고 ‘핫(hot)’한 제품을 가져와서 K뷰티의 테스트 플랫폼이 되도록 한다는 전략이다.

두 사람이 보는 K뷰티의 강점은 혁신이다. 주력상품 중 하나인 블라이드의 패팅워터팩은 샤워를 하면서 마스크를 얼굴에 바른 뒤 몇 초간 두드린 뒤 씻어내면 바로 마스크 팩과 같은 효과를 낸다. 이 대표는 “미국인들은 한국처럼 피부관리에 많은 시간과 돈을 들이지 않는다”며 “미국 생활문화에 맞는 아이디어 제품이 한국에는 많다”고 말했다.

대신 이 제품의 한국 이름인 ‘패팅워터팩’을 그대로 가져와서는 팔리지가 않는다. 영어로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이 제품을 물을 튀기듯 얼굴에 바른다는 뜻의 ‘스플래시 마스크’로 바꿨다. 제품의 특성을 살리되 미국 소비자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컨셉트를 현지화하는 것이다.

글로우 레시피의 주력제품은 스킨케어 종류다. 국내 13개 브랜드와 북미지역 독점판매 계약을 갖고 있다. 브랜드별로 5~15개까지 약 150개의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이 대표는 “K뷰티는 제품에 대한 신뢰가 중요하다”며 “가격은 중상위로 포지셔닝하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말했다. 글로우레시피는 할인을 하지 않는다. 가격을 싸게 내놓으면 제품에 대한 진지한 로얄티를 갖기 어렵고 브랜드 파워를 키울 수도 없다는 이유에서다. 장 대표도 “한국 화장품이 싸고 귀엽다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로우 레시피는 2014년 12월 창업후 1년만에 매출 100만달러를 넘었고 올해는 400만 달러를 예상하고 있다. 하반기에 추진중인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창업 2년만에 1000만 달러까지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K뷰티를 한류 콘텐츠와 접목시키는 마케팅에도 나서고 있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스트리밍 서비스하는 드라마피버에 K뷰티 튜터링 영상을 제작해서 올리는 것이다. CJ가 지원하는 종합한류행사 K콘(con)에도 K뷰티의 패널 및 워크샵을 리드하여 적극 참여하고 있다.

두 사람의 목표는 K뷰티가 역설적이지만 한국의 이미지를 넘어서는 것이다.

“랑콤, 크리스찬 디올, 샤넬은 제품에 프랑스 기업이라는 걸 알리지 않습니다. 고객은 브랜드 그 자체를 선택할 뿐입니다. 글로우 레시피의 목표도 K뷰티가 그 대열에 들도록 하는 것입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