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뀐 금통위서 '경제 하방리스크' 부각…비둘기 성향 강해지나

경기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의견이 다시 확산될 조짐이다.

지난 5월 금통위 회의에서 기준금리 인하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금통위원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진 데다 각종 경제지표도 부진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31일 공개한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한 금통위원은 지난 13일 기준금리 결정회의에서 "이번은 아니더라도 조속한 시일 내 기준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표명했다.

수출부진 등 한국 경제의 하방 위험이 커진 만큼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하함으로써 경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위원은 의견 개진 후 기준금리를 의결할 때는 동결에 동참했지만 사실상 소수의견을 제시한 것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의결 때 소수의견을 낸 금통위원의 실명이 공개되는 것과 달리 의사록에서 발언한 금통위원의 실명은 나타나지 않는다.

기준금리의 조기 인하를 주장한 금통위원은 조동철·이일형·고승범·신인석 등 신임 금통위원 4명 중 한 명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지난 4월 금통위에 합류하고 나서 지난달 처음으로 기준금리 결정회의에 참석했다.

특히 금융위원회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고승범 위원과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 이코노미스트 출신인 조동철 위원은 '비둘기파'(경제성장 중시) 성향이 강한 것으로 평가된다.

새로 바뀐 금통위의 첫 기준금리 결정회의에서 비둘기파 본색을 드러낸 위원이 있는 만큼 앞으로 기준금리를 둘러싼 논쟁이 가열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지난달 금통위 의사록을 보면 기업 구조조정 등 경제의 위험 요인에 대한 언급이 잇따랐다.

바뀌기 전 금통위보다 완화적 통화정책에 무게를 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 금통위원은 "앞으로 진행될 취약업종 및 한계기업 구조조정은 단기적으로 거시 경제의 하방 위험을 확대할 수 있다"고 우려했고 또 다른 위원은 "기업 구조조정 추진이 가시화하면 시장경색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기업 구조조정으로 대량 실업과 신용경색이 발생할 상황에 대비해 완화적 통화정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노무라 등 금융시장 일각에서는 조만간 금통위에서 기준금리 인하의 소수의견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회복세가 뚜렷하지 않은 어두운 경기 지표도 기준금리 인하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달 31일 발표한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4월의 전체 산업생산은 전월보다 0.8% 감소했다.

특히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71.0%로 7년 1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이 1일 발표한 국제수지 통계에서도 올해 4월 경상수지 흑자가 2년 3개월 만에 최소인 33억7천만 달러에 그쳤다.

우리 경제가 수출부진의 터널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기업들의 투자가 위축된 영향이 크다.

이처럼 기준금리 인하의 여건이 조금씩 마련되고 상황에선 미국의 금리 인상이 최대 변수로 꼽힌다.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이르면 이달에 0.25∼0.5%인 기준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신호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앞으로 수개월 안에 미국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것이 적절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만약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릴 경우 우리나라는 내외 금리차 축소에 따른 자본유출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따라 오는 9일 금통위에서는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오는 14∼15일 열리는 연준의 통화정책회의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를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더라도 우리나라에서 자본유출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으면 한은이 기준금리 인하를 본격적으로 논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현재 진행 중인 기업 구조조정도 기준금리 결정의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해운업과 조선업 등에서 구조조정 윤곽이 나와야 정부와 한은이 재정 및 통화정책으로 지원사격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구조조정을 위해 정부가 추가경정 예산 등으로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펴고 한은도 통화정책을 완화적으로 운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노재현 기자 noj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