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스 독재 가문이 부활할 것인가.

필리핀 의회가 지난 9일 치러진 정·부통령 선거의 공식개표에 들어갔다.

관심은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과 여당 후보가 박빙의 대결을 벌인 것으로 알려진 부통령 선거 결과에 쏠려 있다.

26일 GMA 방송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의회가 전날 전체 선거구의 약 27%를 처음 개표한 결과 집권 자유당(LP) 후보인 레니 로브레도(52) 하원의원이 358만여 표, 마르코스 주니어(58) 상원의원이 328만여 표로 1, 2위를 기록했다.

두 후보의 표 차이가 30만 표가량 밖에 나지 않아 집계가 끝날 때까지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다.

선거감시단체인 '책임 있는 투표를 위한 목회자 교구'(PPCRV)와 현지 언론이 선거 직후 선관위 자료를 받아 전체 선거구의 약 96%를 비공식 집계한 결과 로브레도 의원이 마르코스 주니어 의원을 22만 표가량 앞섰다.

이에 대해 마르코스 주니어 의원은 압승을 예상한 출구 조사 결과와 다르다며 부정 투·개표 의혹을 제기했다.

선관위가 한 후보자 이름의 틀린 철자를 바로 잡는다며 선거 시스템 서버의 스크립트(컴퓨터 처리 명령어)를 수정한 것으로 알려지자 마르코스 주니어 의원은 전면적인 조사를 요구했다.

마르코스 주니어 의원 측은 정부 여당이 로브레도 의원을 부통령에 당선시킨 뒤 로드리고 두테르테(71) 대통령 당선인을 의회에서 탄핵하고 대통령직을 넘겨받게 하는 '플랜 B'를 추진할 것이라는 음모론도 제기했다.

두테르테 당선인은 2위 후보를 600만 표 넘게 앞서는 압승을 거뒀다는 비공식 집계가 나온 직후 차기 대통령으로 인정받고 정권 인수 작업을 하고 있다.

의회의 공식 집계가 원활히 이뤄지면 오는 30일 부통령 당선인이 드러나겠지만, 개표 과정에서 부정 의혹이 불거지면 늦어질 수 있다.

마르코스 주니어 의원은 "정치 운명을 국민의 손에 맡기겠다"며 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그는 아버지의 독재 시절 인권 유린에 대한 사과를 거부하며 오히려 그때가 필리핀의 황금기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버지의 고향인 일로코스 노르테의 주지사, 하원의원을 거쳐 2010년 상원에 입성했다.

부통령에 당선되면 6년 뒤에는 대권에 도전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번에 대선과 함께 실시된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부인으로 '사치의 여왕'으로 불리는 이멜다는 하원의원 3연임, 딸 이미는 일로코스 노르테 주지사 3연임에 각각 성공했다.

필리핀에서 총선과 지방선거의 개표, 당선인 발표는 선관위가 맡고 정·부통령 선거는 의회가 담당한다.

(하노이연합뉴스) 김문성 특파원 kms123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