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컵 루 미국 재무장관과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이 일본의 ‘엔저(低)정책’을 놓고 또다시 충돌했다. 지난달 14~15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 이후 한 달여 만이다.
[엔저 놓고 또 충돌한 미·일] 일본 "이틀에 5엔 뛴 건 투기 탓" vs 미국 "시장개입은 대지진 같은 때만"
두 사람은 지난 20~21일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시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에 참석해 엔저정책을 논의했지만 견해차를 줄이지 못했다. 안방에서 외환시장 개입에 대한 미국 용인을 받아내려 한 일본 정부의 의도가 물거품이 됐다.

◆외환시장 질서 vs 무질서

아소 재무상은 G7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지난 몇 주 (엔화가치가) 이틀간 5엔, 열흘간 8~9엔 요동친 것은 질서 있는 움직임이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루 장관은 “그 같은 외환시장은 무질서한 상황이 아니다”고 맞받아쳤다. “일방적으로 편향된 투기적 움직임을 보였다”는 아소 재무상의 주장에 “(외환시장이) 무질서라고 판단하는 조건의 기준은 높다”며 인식차를 여전히 드러냈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본 경제가 큰 타격을 받은 상황에서 엔화가치마저 달러당 70엔대로 치솟은 2011년에는 일본 정부의 시장 개입을 눈감아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엔저정책을 놓고 미·일 양국의 견해차가 다시 충돌(clash)했다”고 보도했다. 미 정부는 지난달 29일에는 일본, 한국 등 5개국을 환율조작관찰 대상국으로 지정했다.

G7에서 어떻게든 정책공조를 이끌어내야 하는 일본은 한 달여 전보다는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아소 재무상은 “루 장관과 격론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며 “저쪽도 이쪽도 선거가 있고, 서로 여러 가지 일을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애써 루 장관의 견제를 평가절하했다. 다음달 미국 중앙은행(Fed)이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지난주 이후 엔화가치가 달러당 110엔대로 다시 떨어진 점도 아소 재무상이 발언 수위를 낮춘 이유라고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해석했다.

◆제 코가 석 자인 미·일

미국과 일본이 지난달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 이후 한 달 이상 환율정책을 놓고 마찰을 빚고 있는 것은 경제적으로 ‘제 코가 석 자’인 상황 때문이다. 올 들어 10% 이상 오른 일본 엔화가치는 이달 초 1년6개월 만에 최고인 달러당 105엔대까지 치솟으면서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가 좌초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높아졌다.

중국 등 신흥국 경기둔화 속에 2015회계연도(2015년 4월~2016년 3월) 일본 제조업 경상이익이 4년 만에 감소하는 등 ‘엔고(高) 후폭풍’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18일 발표된 지난 1분기 일본 국내총생산(GDP)이 두 분기 만에 증가(0.4%)했지만 2월 날짜가 하루 많은 ‘윤년 효과’를 감안하면 사실상 제자리걸음했다. 시장에서는 일본은행이 6월 추가 양적 완화에 나서 엔저를 유도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지난 2~3년간 세계 경제를 이끌어온 미국 사정도 녹록지 않다. 지난 1분기 미국 GDP 증가율은 연간 기준 0.5%로 2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해외수요 위축과 달러 강세, 엔화 약세로 무역적자는 다시 불어나는 추세다. WSJ가 이달 시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올해 미국의 GDP, 고용, 신규 주택 착공 등에 대한 이코노미스트들의 전망치가 일제히 낮아졌다. Fed가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미 경제는 더 부진할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재정정책도 엇박자

한편 G7 재무장관들은 재정정책을 놓고 엇박자를 냈다. 아소 재무상은 “수요를 늘리려면 재정이 매우 중요하다”며 주요국이 재정지출 확대에 나설 것을 제안했다. 미셸 사팽 프랑스 재무장관도 “여유 있는 국가는 재정(정책)을 사용해야 한다”며 거들었지만 독일과 영국의 반대에 부딪혔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금융·재정·구조정책 중 구조개혁이 가장 중요하다”며 “이번 회의에서 재정 투입은 화제가 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루 장관도 “지금은 (금융위기가 있던) 2008년이 아니다”며 일본의 재정 확대 주장에 부정적이었다.

도쿄=서정환 특파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