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의 5대 정보기술(IT)기업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미국 기업 전체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현금과 단기금융상품 등 포함) 중 30%가 이들 기업에 쏠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기업은 현금성 자산 72%를 해외에 쌓아둔 채 미국 내 투자를 꺼리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법인세 때문에…미국에 투자 않는 5대 IT기업
◆5대 IT기업 비중 30%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집계한 결과 금융회사를 제외한 미국 기업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지난해 말 기준 1조6800억달러(약 2001조7200억원)에 달했다.

기업별 순위를 보면 애플이 2160억달러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마이크로소프트(MS·1026억달러), 구글의 지주회사 알파벳(731억달러), 시스코(604억달러), 오라클(523억달러) 등 5위까지 IT기업이 싹쓸이했다.

5개 기업이 보유한 현금은 5040억달러로 기업 전체의 30%에 달했다. 매년 같은 조사를 벌이는 무디스는 1~5위를 IT업체가 차지한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라고 밝혔다.

현금 보유가 IT 업종에 쏠린 것은 물론 상위 기업으로 현금이 집중되는 현상도 심해졌다. 이들 5대 기업이 보유한 현금은 50대 기업이 보유한 1조1000억달러의 약 절반에 달했다. IT기업 전체가 보유한 현금은 7770억달러로 전체의 46%를 차지했다. 이 비중은 2014년 41%에서 높아진 것이다.

◆현금 72%는 해외에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기업의 현금성 자산이 1년 전보다 1.8% 증가했다며 그만큼 투자사업 확대를 꺼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경제의 성장둔화가 원인이라고 FT는 설명했다. 무디스는 지난해 기업들이 새로운 장비를 구입하는 데 쓴 돈이 8850억달러로 전년 대비 3%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미국 기업이 쉽사리 투자에 나서지 않는 또 다른 이유로는 과도한 세금부담이 꼽혔다. 전체 현금성 자산 중 72%인 1조2000억달러(5개 기업은 88%)가 해외에 비축돼 있는데, 이를 미국으로 반입하면 막대한 세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라고 무디스는 지적했다. 애플은 현금성 자산 중 93%를, MS는 94%를 해외에 쌓아두고 있다. 알파벳(59%)과 시스코(94%), 오라클(87%)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리처드 레인 무디스 선임부대표는 “해외 사업 비중이 높은 IT기업이 미국 바깥에 돈을 쌓아두고 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세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이런 현상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익부 빈익빈 심화

미국 기업의 이익이 IT 대기업으로 집중되면서 나머지 기업의 재무구조는 악화되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분석한 결과 지난해 미국 기업의 총부채는 6조6000억달러로 1년 전보다 15% 늘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애플과 알파벳 등 상위 1%에 해당하는 25개 기업의 현금 보유 비중이 51%로 5년 전 38%에서 크게 높아졌다고 전했다. 나머지 99% 기업은 지난해 부채가 7300억달러 늘고 현금은 오히려 400억달러 감소했다. 이들 기업의 현금은 9000억달러에 불과하나 빚이 6조달러에 달해 부채 대비 현금 보유 비중이 15%로 최근 10년간 가장 낮았다. 금리가 오르면 이들 기업은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