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년 대만 역사상 첫 여성 국가지도자인 차이잉원(蔡英文·59) 총통(대통령)이 20일 취임했다. 세계의 이목이 쏠린 취임사에서 그는 “양안(兩岸: 중국과 대만) 관계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 대화 및 소통 방식을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월16일 총통 선거에서 반중(反中)·대만독립 성향 젊은 층의 열렬한 지지를 등에 업고 당선된 차이 총통이 취임사를 통해 양안관계에 대해 어떤 언급을 할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가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는 것을 골자로 한 ‘92컨센서스’를 받아들이느냐 여부는 4년간 양안관계를 결정지을 시금석으로 인식됐다. 그가 속한 민주진보당과 핵심 지지층은 대만독립 노선을 보다 분명히 해줄 것을 그에게 요구해왔다. 반면 중국 정부와 대만 재계에서는 차이 총통이 92컨센서스를 인정해주길 바랐다. 차이 총통은 취임사에서 92컨센서스를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현상 유지를 선언하면서 ‘절묘한 균형’을 선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과 평화·안정 원해”

차이 총통은 당선이 확정된 직후 기자회견에서 “대만의 민주체제와 국가정체성은 반드시 존중받아야 한다”며 “대만에 대한 중국의 압박은 양안관계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민당 소속으로 친중(親中) 성향인 전임 마잉주(馬英九) 총통과는 다른 길을 갈 것임을 밝혔다.

하지만 차이 총통은 취임사에서 양안관계의 현상 유지를 원한다고 했다. “1992년 양안 대표들은 소통과 협상을 통해 상호 인정과 이해에 도달했다”며 “나는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양안관계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 현재의 대화 및 소통 방식을 유지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발언은 ‘92컨센서스를 존중하라’는 중국 정부의 요구와 대만 독립을 원하는 핵심 지지층의 정서를 모두 고려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마이너스 성장하는 경제

대만 경제는 1990년대 중반부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 연평균 5% 이상 탄탄한 성장세를 이어갔다. 상황이 급변한 것은 2011년부터다. 성장세가 가파르게 둔화하더니 지난해에는 6년 만에 가장 낮은 0.75%로 주저앉았다. 올 1분기엔 -0.84%로 세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다. 한때 ‘아시아의 네 마리 용(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으로 불리던 국가 중 가장 저조한 성장률이다.

대만 경제는 전체 수출의 40%, 국내총생산(GDP)의 16%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민주진보당 지지층은 국민당 정부의 친중정책이 중국 의존도를 높였고, 이는 ‘부메랑’이 돼 대만 경제의 경쟁력 상실로 이어졌다고 비판하고 있다.

국민당이 집권하던 시절 양안무역경제협정 체결 등으로 대만 기업들은 중국 본토로 몰려갔다. 그 영향으로 대만 산업이 공동화하면서 청년실업률은 10%대로 치솟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 경제 성장세마저 빠르게 둔화하자 대만의 수출은 지난달까지 15개월 연속 감소했다.

차이 총통은 취임사에서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인도 등과 교역 및 경제협력을 늘리는 ‘신남방정책’으로 경제를 활성화하겠다고 밝혔다. 친환경 기술, 인터넷, 바이오의약품, 지능형 기계, 방위산업 등 5대 산업을 신성장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계획도 제시했다.

◆핵심 지지층 설득이 관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과 관계가 악화되면 가뜩이나 어려운 대만 경제에 치명타가 될 수 있어 차이 총통이 절묘한 균형전략을 택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조이스 린 대만 탐캉대 아세안연구센터장은 “중국이 이미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전략을 내세워 아세안 국가들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에 양안관계가 악화되면 아세안 국가들과의 교역 확대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차이 총통이 8년 만에 정권을 잡은 민주진보당 내 강경 반중그룹과 자신의 핵심 지지층을 앞으로 어떻게 설득해 내느냐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베이징=김동윤 특파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