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쿠데타 경고 속 '공장몰수·軍훈련' 등 비상사태 조치
호세프 탄핵정국 여파로 브라질-남미 좌파정권들 마찰 심화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을 계기로 중남미 지역의 정치지형이 요동치고 있다.

브라질에 이어 남미 좌파의 상징적 존재인 베네수엘라마저 극심한 경제난으로 대혼돈에 빠지면서 이 지역 좌파 블록 전체로 위기가 확산될 조짐이다.

14일(현지시간) 외신들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사회주의 정권을 이끄는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이날 수도 카라카스의 이바라 광장에서 한 연설을 통해 조업을 중단한 공장을 압류하고 해당 기업주를 체포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반정부 여론이 극에 달한 가운데 전날 선포한 국가 비상사태의 구체적 시행방침으로 발표됐다.

그는 연설에서 "부르주아(자본가)들에 의해 마비된 생산능력을 회복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국가 경제를 파괴하려고 생산을 중단한 자는 수갑을 채워 교도소로 보내야 한다" 등의 강도높은 발언을 쏟아내며 반대파를 힘으로 누르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마두로 대통령은 또 외국의 침략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이날 군사훈련 실시를 지시했다고 AFP 통신 등이 보도했다.

베네수엘라는 경제 위기에 따른 생필품 부족으로 곳곳에서 약탈이 벌어지는 등 사실상 '무법천지'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국 언론들이 전날 '마두로 대통령이 측근 또는 군부에 의한 쿠데타로 축출될 수 있다'는 미 정보당국 관계자들의 경고를 앞다퉈 보도하는 등 정권 붕괴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11월 대선을 통해 우파 정권으로 교체된 아르헨티나는 중앙은행이 보유한 달러를 인위적으로 시장 환율보다 낮은 가격에 매도하도록 해 국가에 손실을 끼친 혐의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을 13일 기소함으로써 '탈(脫) 좌파' 흐름을 더욱 가속화했다.

직전 대통령인 페르난데스는 남편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과 함께 '12년 좌파 부부대통령' 시대를 이끈 바 있다.

한때 남미 대륙 전체를 물들였던 '핑크 타이드'(pink tide : 온건한 사회주의 성향의 좌파 물결)가 급속도로 퇴조하는 상황에서 남은 좌파 정권들은 브라질의 호세프 대통령 탄핵 추진이 부당하다고 공개 비난하며 반전을 꾀하고 나섰다.

호세프 대통령의 탄핵이 최종 결정돼 13년 만에 좌파 집권이 공식으로 막을 내리면 주변국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 내 국제기구들도 보조를 맞추고 있다.

남미국가연합의 에르네스토 삼페르 사무총장은 최근 "브라질에서 민주주의 시스템이 붕괴하는 상황이 조성되면" 회원국 자격을 정지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고,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 역시 브라질의 회원국 자격 정지 등의 제재를 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브라질 외교부는 탄핵 추진을 비난한 쿠바,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 니카라과 등 중남미 5개국 좌파 정권들에 강한 유감을 표시하며 반격에 나섰다고 브라질 언론들이 전했다.

브라질사회민주당(PSDB) 소속으로 미셰우 테메르 대통령 권한대행 정부에 참여한 주제 세하 외교장관은 "호세프 탄핵과 관련해 허위사실을 퍼뜨리고 있다"며 이들 5개국과 외교관계를 재고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세하 장관은 남미국가연합의 삼페르 사무총장의 발언에 대해서도 불괘감을 나타냈다.

그러자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대통령은 "탄핵심판은 브라질 사상 첫 여성대통령인 호세프에 대한 완전히 불공정한 행위"라며 브라질 주재 자국 대사를 불러들였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대사 소환이 호세프 대통령 탄핵심판과 직무정지에 대한 보복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이번 조치는 좌파 정권들과 브라질의 관계가 악화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상파울루·서울연합뉴스) 김재순 통신원 강건택 기자 fidelis21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