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시장경제국’ 여부를 놓고 중국과 유럽·미국이 갈등을 빚고 있다.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15년이 경과하는 오는 12월 모든 국가로부터 시장경제지위(MES)를 부여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중국이 철강제품 등을 ‘밀어내기 수출’하는 바람에 굴뚝산업이 몸살을 앓고 있는 유럽과 미국은 반발하고 있다. 중국이 시장경제지위를 인정받으면 반(反)덤핑 관세를 피하기가 쉬워진다.

유럽의회는 12일(현지시간) 중국에 시장경제지위를 부여하는 것에 반대하는 결의안을 찬성 546표, 반대 28표, 기권 77표로 채택했다. 결의안은 “중국은 정부 보조금 지급 관행과 투명성 결여로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체제를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유럽의회는 결의안을 통해 오히려 중국 상품의 저가 공세에 대항해 반덤핑 조사를 강화할 것을 요구하고, 중국 상품에 대한 관세 인하에도 반대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결의안에 구속력은 없지만 이 문제를 논의하는 유럽위원회(EC)에 강력한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EC와 28개 유럽연합(EU) 회원국은 올해 안에 중국에 대한 시장지위 부여를 결정할 계획이었지만 승인권이 있는 유럽의회의 반대로 연내 결정이 어려워질 전망이다.

중국은 2001년 12월 WTO에 가입하면서 15년 동안 비(非)시장경제지위를 유지하는 조건에 합의했다. WTO 체제상 시장경제국이 되면 덤핑률을 계산할 때 수출국의 국내 가격과 수출제품 판매가격을 비교한다. 하지만 비시장경제국은 제3국의 국내 가격을 적용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높은 반덤핑 관세를 부과받는다. 지금은 중국산 철강이 EU에 수출될 때 제3국인 브라질 내수용 철강과 비교돼 덤핑 판정을 받지만, 중국이 시장경제국으로 인정받으면 브라질 철강보다 싼 중국 내수용과 비교되기 때문에 덤핑 판정을 받을 가능성이 줄어든다.

뉴질랜드(2004년)와 한국(2005년) 등은 일찍이 중국에 시장경제지위를 부여했다. 중국은 WTO 가입 의정서에 따라 올 12월11일 이후 자동으로 모든 국가가 중국에 시장경제지위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유럽과 미국, 일본, 멕시코, 인도 등은 중국 정부가 여전히 시장에 개입하고 있다며 난색을 보이고 있다.

유럽제조업협회연합은 EU가 중국에 시장경제지위를 부여하면 EU 경제가 2% 후퇴하고, 일자리가 최대 350만개까지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