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 무시하다가 심판받아"…보수진영에선 3당 창당론도

미국 양당체제의 한 축을 이루는 공화당이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의 사실상 대선후보 확정과 함께 사활의 갈림길에 섰다는 진단이 나왔다.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3일(현지시간) 사설을 통해 "이제 공화당은 트럼프의 당"이라고 규정했다.

공화당이 지향하는 가치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원칙 탓에 당 지도부로부터 가장 많은 비판을 받아온 트럼프가 당 가치의 최후의 보루인 대선후보로 도약했다는 아이러니를 두고 한 말이다.

NYT는 보수성향 싱크탱크 연구원이 상황을 요약한 말을 한마디 더 소개했다.

윤리공공정책센터의 선거 전략가 헨리 올슨은 "트럼프의 승리와 함께 160년 전통의 정당인 공화당이 자살하는 것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NYT는 트럼프가 현대의 주요 정당에서 배출한 대통령 후보 중에 가장 논란이 많고 준비가 덜 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트럼프가 사실상 대선후보 자리를 꿰찬 것은 공화당원들의 준엄한 심판이라고 분석했다.

공화당 지도자들이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생각한 것이 별로 없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선거에 나선 후보들이 경기침체로 집, 일자리, 예금을 잃은 중산층, 전쟁으로 사지를 잃은 용사들을 돕겠다고 외쳤으나 모두 빈말에 그쳤다는 것이다.

NYT는 트럼프가 외국인 혐오, 고립주의, 기괴한 생각을 설파하며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구호 하나로 국민을 포섭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는 공화당 유권자들이 자신들을 배신한 정치인들에게 얼마나 깊은 반감을 갖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NYT는 이어 공화당 지도자들 가운데 트럼프 지지 쪽으로 선회하는 이들을 지적하며 공화당이 아직 근시안적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신문은 "공화당이 1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봉착했다"며 "과연 링컨의 정당으로 애착을 지니는 정당에 도널드 트럼프를 간판으로 내세울 수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보수진영에서는 트럼프를 배제하기 위해 제3당이나 제3의 대선후보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조지 H.W. 부시,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각각 국방장관, 국무장관을 지낸 엘리엇 코언은 이날 워싱턴포스트(WP) 기고문을 통해 이같이 촉구했다.

코언 전 장관은 "이제 다 끝났다"며 "기질, 가치관, 정책 선호도를 볼 때 완전히 부적합한 후보가 공화당 대선후보가 됐다"고 개탄했다.

그는 "제3의 후보나 제3당이 필요한 때"라며 "트럼프가 기존에 축적된 정치적 지혜를 모두 파괴한다면 이 방법을 생각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코언 전 장관은 민주당 대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 대해서는 트럼프와 비교할 때 차악(次惡)이지만 각종 추문과 비행에 시달리는 데다 함께 활동하는 좌파들이 언론, 종교, 기업, 결사의 자유를 해칠 수 있다고 거리를 뒀다.

일간 USA투데이는 사설을 통해 공화당에 긴급 자체진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트럼프가 공화당에 해롭다는 말은 두말하면 잔소리"라며 "상·하원의 다수 의석, 주지사 34명 보유에 빛나는 공화당이 트럼프 한 명 때문에 벼랑에 몰렸다"고 진단했다.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jangj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