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연기론은 힘얻어…정치자금 모금 파티 여론 의식해 얌전하게
아베 재난극복 최우선으로 지지 확보…긴급사태 조항 개헌론 주목 가능성

일본 구마모토(熊本)현을 강타한 연쇄 지진이 일본 정치권을 흔드는 변수로 부상했다.

우선 정치권 초미의 관심사였던 중·참의원 동시 선거에 대해서는 이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도 포기를 한 것으로 20일 알려졌다.

대신 동시 선거 실시와 한 묶음으로 여겨졌던 소비세 인상 보류는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양상이다.

◇ 동시선거 구상 물 건너 가나…증세 연기론 대두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아베 총리가 올해 여름 예정된 참의원 선거 때 중의원 선거까지 함께하는 구상을 접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이미 정부 고위 관계자가 연립정권의 한 축인 공명당 간부에게 "(중·참의원 동시선거를 위한) 중의원 해산은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아베 총리가 (중의원) 해산의 'ㅎ'자도 (생각한 적) 없다고 계속 말해왔다"며 "이는 해산하지 않는다는 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의 방향 전환은 지진 피해를 본 구마모토현에서는 참의원 선거를 하기조차 쉽지 않으며 이런 상황에서 중의원을 해산해 동시 선거를 하는 것은 현지 지방자치단체에 큰 부담이 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1995년 한신·아와지(阪神·淡路) 대지진(일명 고베 대지진)이나 2011년 동일본대지진 후에 피해 지역의 자치단체장 선거가 연기된 사례도 있다.

반면 재년 4월로 예정된 소비세율 인상(8→10%)을 보류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소비세 인상은 당장 지진 피해 지역 주민의 가계 부담을 키우는 일이고 경제 전반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자민당 정조회장은 20일 보도된 닛케이와의 인터뷰에서 소비세율을 1% 포인트만 올려 9%로 하는 절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앞서 아베 총리는 리먼 쇼크나 대지진과 같은 사태가 오지 않는 한 예정대로 소비세를 인상하겠다고 했다.

구마모토 연쇄 지진을 '대지진'으로 규정할지의 문제가 남았으나 소비세 인상을 보류할 명분이 생긴 상황이다.

다만 '소비세 인상 보류에 관한 찬반 의견을 묻기 위해 동시 선거를 한다'는 기존 구상과는 다르게 동시 선거가 무리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정부·여당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승인안과 관련 법안을 이번 정기 국회에 처리하는 것을 포기하고 올해 가을 임시 국회로 미룰 뜻을 제1야당인 민진당에 전했다고 보도했다.

아베 정권은 지진 피해 복구가 시급한 상황에서 TPP를 심의할 시간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 아베, 재난 극복 최우선으로 지지·신뢰 확보 도모

선거, 소비세, TPP를 둘러싼 불투명한 상황이 아베 총리의 정치 구상에 악재가 될지 호재가 될지를 단언하기는 어렵다.

아베 정권은 일단 구마모토 지진 대응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이를 통해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얻겠다는 구상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14일 지진 발생 15분 만에 약식 기자회견을 열어 안전을 최우선으로 대응하겠다는 뜻을 천명하고 피해 복구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그는 이르면 21일 피해 지역을 직접 방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구마모토 일대에 대한 격심재해(특별재해)지역 지정도 다음주에서 이번 주말로 앞당길 예정으로 전해졌다.

아베 총리는 애초 4월 말 5월 초 일본 연휴를 이용해 유럽과 러시아를 방문할 계획이었는데 지진 피해 대응을 우선하기 위해 이들 일정을 단축하는 방안을 조정 중이라고 닛케이는 보도했다.

나카타니 겐(中谷元) 일본 방위상은 이달 말 필리핀과 동티모르를 방문하려던 계획을 포기하는 등 내각 주요 인사들이 재난 대응을 중시하는 태도를 내보이고 있다.

여야 각 당은 여론을 의식했는지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열리게 마련인 정치자금 모금 파티에서 지나치게 요란한 분위기를 연출하지 않으려고 신경 쓰고 있다고 산케이는 분위기를 전했다.

19일 열린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의 파티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의 파티에는 관례와 달리 아베 총리는 출석하지 않았고 대신 지진 피해자 지원을 위한 모금함이 등장했다.

아소 부총리는 건배를 자제했고, 기시다 외무상의 파벌 모임은 피해자를 위한 묵념으로 행사를 시작했다.

구마모토 지진 때문에 '동시 선거로 개헌 세력을 단번에 확대한다'는 구상에는 제동이 걸렸으나 아베 총리가 필요성을 강조해 온 '긴급사태 조항' 신설이 주목받을 가능성도 있다.

이는 재해 시 총리 권한을 강화하고 재난 극복을 위해 국민의 일부 기본권에 제약을 가할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하자는 구상이다.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sewon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