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내달 G7 정상회의 앞둔 발언이 화근
안전자산 선호 현상 가속…엔화 매수 몰려
일본 증시 두달 만에 최저…추가 양적완화 가능성
지난 2월 중순 이후 주춤하던 엔화 강세 흐름이 이달 들어 다시 빨라졌다.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최근 사흘 연속 상승하면서 1년5개월여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미국의 금리인상이 늦춰지고 있는 데다 국제 유가 하락으로 안전자산인 엔화에 매수세가 몰린 영향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외환시장 개입 자제 발언까지 나오면서 엔화 가치는 2014년 10월 말 일본은행의 2차 양적 완화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엔고(高)와 주가 하락으로 ‘아베노믹스(아베 총리의 경제정책)’가 위기에 몰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엔화값 1년5개월 만에 최고] 위기의 '아베노믹스'…"시장개입 자제" 발언이 엔고 부채질

◆아베, “통화가치 절하 피해야”

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외환시장에서 엔화 가치는 2월 미국 비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예상치를 웃돈 것으로 나타나자 달러당 110엔 아래서 움직였다. 하지만 오전 11시30분 아베 총리가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발언한 내용이 전해지자 단숨에 109.94엔까지 뛰었다.

아베 총리는 인터뷰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경쟁적인 통화가치 절하는 피해야 한다”며 “인위적인 외환시장 개입도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달 일본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 통화전쟁(각국의 경쟁적인 통화가치 절하 정책)과 외환시장 개입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전한 것이다. 시장은 일본 정부의 시장 개입이 없을 것으로 받아들이며 엔화 매수에 나섰다.

아베 총리 발언은 전날 일본 정부 대변인격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의 발언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스가 장관은 “외환시장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으며 필요하면 적절히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도 전날 의회에 출석해 “필요하다면 적극적인 양적 완화를 강구하겠다”고 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정부 관계자들의 이 같은 엇갈린 발언이 외환시장에서 투자자 혼란을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엔화 가치 상승요인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29일 재닛 옐런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금리 인상을 신중하게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달러는 약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국제 유가 하락도 안전자산인 엔화 가치를 들썩이게 하고 있다. 서부텍사스원유(WTI)는 지난달 한때 40달러를 넘었지만 35달러대로 떨어지면서 1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추가 양적 완화 가능성

엔고는 일본 기업들의 실적전망 하향 조정, 주가 하락으로 이어졌다. 6일 닛케이225지수는 15,715.36에 마감, 아베노믹스 이후 최장인 7일 연속 하락하며 2개월 만에 최저로 주저앉았다. 자동차, 전자 등 수출주들이 약세를 주도하고 있다. 증권 전문가들은 도요타자동차는 엔화 가치가 1엔 오르면 연간 영업이익이 400억엔 줄어드는 것으로 분석했다.

노무라증권은 올해 달러당 117엔을 전제로 일본 주요 상장사의 경상이익이 전년 대비 7.2%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엔화 가치가 110엔 위로 오르면 이익 증가율은 5% 수준으로 낮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기업실적 증가세에 제동이 걸리면 아베노믹스도 좌초할 수 있다. 기업실적 개선을 통한 소비와 투자 증가로 일본 경제 성장을 이끈다는 아베노믹스의 구도가 깨지기 때문이다. 엔고 흐름을 돌리기 위한 일본은행의 추가 양적 완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일본은행은 이달 27~28일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연다. 주요 투자은행(IB)이 예상하는 올 연말 엔화 가치는 달러당 113엔이다. 바클레이즈캐피털(100엔) JP모간(103엔) 등은 110엔 위로 엔화 강세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도쿄=서정환 특파원 ceose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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