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한일 핵무장은 재앙"…힐러리 "핵무기 경쟁 유발"

31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를 무대로 제4차 핵안보정상회의의 막이 오르면서 미국 공화당의 대선 선두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가 코너에 몰리는 양상이다.

바로 '핵무장 용인론' 때문이다.

어느 시점에 가서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허용해줄 수 있다고 발언한 것이 국제 비확산체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으로 비치면서 미국 안팎에서 십자포화를 받고 있다.

우선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백악관이 모처럼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트럼프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

벤 로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은 이날 한·미·일 정상회의가 끝나고서 한 언론브리핑에서 "트럼프의 발언은 수십 년간에 걸쳐 확립된 초당파적 국가안보 독트린을 위배하는 것"이라며 "만일 미국이 기존 입장을 바꾸고 핵무기 확산을 지지한다면 그것은 재앙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핵안보정상회의 개막일인 이날 워싱턴포스트(WP)에 기고한 글에서 "핵무기 확산이 불가피하다는 숙명론에 우리 스스로를 내맡겨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지금은 핵의 세상"(25일 뉴욕타임스 인터뷰)이라고 주장한 트럼프를 겨냥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러면서 "핵무기를 사용했던 유일한 국가로서, 미국은 핵무기 제거를 선도해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며 "핵무기 없는 세상의 비전을 살려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지난 7년간에 걸친 자신의 업적을 송두리째 부정하려는 트럼프를 고운 시선으로 보기 어려운 심정은 충분히 짐작할만하다.

상대당인 민주당은 말할 것도 없고 공화당의 경쟁후보도 트럼프를 향해 "자격 미달"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민주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30일 MSNBC 방송에 나와 "트럼프의 이론대로 한국과 일본이 핵무기를 갖게 한다면 중동 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 핵무기 경쟁이 벌어질 것"이라며 "트럼프의 발언은 나를 포함해 많은 사려깊은 세계의 지도자들에게 공포를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화당 경선 후보인 존 케이식 오하이오 주지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금 장난하는 것이냐"라고 반문한 뒤 "그의 엄지가 방아쇠에 얼마나 가까이 있느냐"며 "이것은 미국을 이끄는 길이 아니며 세계를 이끄는 길도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이날 오전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일 3국 정상회의 결과는 트럼프 발언에 대한 '무언의 반박'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날 회의에서 트럼프 발언이 의제로 오른 것은 아니지만, 트럼프가 핵무장을 용인하겠다고 한 한국과 일본이 '한반도 비핵화' 목표를 재확인하고 북한의 핵포기를 끌어내기 위해 '단합'하자는데 한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미국에 이어 2차 핵안보정상회의를 개최했던 우리는 이번으로 종료되는 핵안보정상회의 후속 과정에서 핵안보 레짐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는 데 주도적으로 이바지 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트럼프로서는 미국의 비확산 정책과 국제사회의 흐름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섣불리 핵무장 용인론을 꺼냈다가 '본전'도 거두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워싱턴연합뉴스) 노효동 특파원 rh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