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통신, 北 룡연리 르포…북미 관계 악화로 발굴 재개 요원

'그들이 고향에 돌아올 때까지'(Until they are home) 단 한 명의 유해도 적진에 두지 않겠다는 미군의 성스러운 약속에도 북한에는 아직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미군 유해가 많다고 AP통신이 24일 보도했다.

AP통신의 에릭 탈매지 평양지국장은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북한의 작은 마을을 찾아 점점 잊히는 미군 유해를 재조명했다.

탈매지 국장이 찾은 북한의 마을은 평양에서 북쪽으로 150km가량 떨어진 평안북도 구장군 룡연리였다.

룡연리 마을에서 만난 송홍익 할아버지는 자루에 담긴 뼈들을 꺼내면서 미군 유해라고 설명했다.

골반과 무릎 사이에 뻗어 있는 대퇴골과 두개골, 턱 조각은 물론 군화와 녹슨 녹색 철모도 자루에서 나왔다.

송 할아버지는 마을에서 나온 미군 유해가 70∼100구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마을 언덕에 임시로 만든 봉분을 삽으로 파기 시작했다.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나선 봉분에서 나온 유해를 자루에 담아 되묻었다.

마을에서 유해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은 4년 전부터다.

청천강 유역의 제10 수력발전소 공사를 위한 땅파기 작업이 시작됐기 때문이었다.

물론 마을에서 나온 유해가 미군이 아닌 유엔군이나 동물의 뼈일 수도 있다.

그러나 룡연리 마을에서 1950년 11월 중반부터 12월까지 북한을 도운 당시 중공군과 미군의 전투가 있었던 점을 고려할 때 상당수가 미군 유해일 가능성이 크다.

룡연리를 포함한 구장군에는 한국전에서 숨진 미군의 유해 1천600구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미국 국방부는 한국전 참전 미군 가운데 7천800여 명을 실종자로 분류하며, 이 중 5천300여 명의 유해가 여전히 북한 지역에 남아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유해 발굴 작업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1996∼2005년 미국과 북한 공동 발굴단은 33차례 작업 끝에 229구의 미군 유해를 수습했다.

그러나 미국이 발굴단원들의 안전이 보장되지 못한다는 이유로 공동 발굴 작업을 중단했다.

당시 북한이 유해 발굴 작업을 미국에서 달러를 얻어내기 위한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던 상황이었다고 AP통신은 설명했다.

2011년에 발굴 재개 논의가 오가긴 했지만 실제 성과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북한에는 아직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미군 유해들이 즐비하지만 현재 미국과 북한의 냉랭한 관계를 고려할 때 발굴 재개는 요원한 일로 보인다.

올해 들어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미사일) 발사, 그에 따른 국제사회의 제재로 미국과 북한의 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미 국방부의 전쟁포로·실종자 담당국 관계자는 한국전에서 실종된 미군을 위한 인도주의적 노력을 강조하면서도 발굴조사단을 북한에 다시 보내는 논의를 하겠냐는 질문에는 "지금 이 시점에서는" 계획이 잡혀있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남권 기자 kong7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