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트로, 기자회견서 CNN 기자와 정치범 질의응답 공방
오바마, 헌화로 일정 시작하고 국빈 만찬으로 마무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쿠바 국빈 방문 이틀째인 21일(현지시간) 정상회담, 호세 마르티 기념관 헌화, 국빈 만찬 등 숨 가쁜 일정을 소화했다.

이날 가장 큰 공식 일정인 정상회담을 위해 혁명궁전에서 대면한 오바마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반갑게 악수를 하면서 취재진을 향해 환하게 웃었다.

두 사람은 TV 카메라에 녹음되지 않았지만, 몇 마디 인사를 주고받은 뒤 쿠바 군대를 사열했다.

이날 만남은 카스트로 의장이 전날 공항에 나가 오바마 대통령을 영접하지 않은 터라 이번 국빈방문의 첫 대면이었다.

두 사람은 2013년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처음 만난 적이 있다.

그러나 2시간가량 이어진 정상회담을 마친 후 열린 기자회견장에서 인권 등의 문제를 놓고 잠시 냉랭한 분위기가 감돌기도 했다.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에 참석한 카스트로 의장은 쿠바 출신 미국인 2세인 짐 아코스타 CNN 기자와 설전을 주고 받았다.

아코스타가 "왜 쿠바에는 정치범이 있느냐"고 공격적으로 질문하자 카스트로 의장은 "당장 풀어줘야 할 정치범 명단을 달라. 정치범이 있다면 오늘 밤이 되기 전에 석방하겠다"며 맞받아쳤다.

공방 장면은 국영TV를 통해 전국으로 방영됐으며, 이를 시청한 쿠바 시민들은 놀라는 표정이었다.

카스트로 의장이 생중계된 기자회견에 나오는 일을 흔히 볼 수 없는 데다 기자로부터 따지는 듯한 질문을 받아서다.

운전사인 라울 리오스(47)는 "카스트로 의장이 쿠바에서 모든 인권이 존중받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을 듣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라고 AP통신에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어 카스트로 의장 주최로 혁명궁전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 영부인 미셸 여사를 비롯해 백악관 보좌진, 의원들과 함께 참석했다.

미셸 여사는 검은색 바탕에 다양한 색깔의 꽃무늬가 새겨진 원피스를 입고 만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참석자들은 쿠바 전통음악 보존에 앞장서온 파일데 유스 밴드의 반주를 들으며 새우 무스, 럼주가 가미된 크림 수프, 전통 돼지고기 요리, 바나나 칩 등을 즐겼다.

쿠바의 대표 명물인 시가도 음미했다.

앞서 오바마 대통령은 호세 마르티 기념관이 있는 아바나 혁명광장에서 이날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쿠바의 수도인 아바나에 있는 혁명광장을 찾은 오바마 대통령은 양국 관리들이 도열한 채 양국의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호세 마르티 기념관 앞에서 헌화했다.

그는 미국 국가가 연주되자 가슴에 손을 올린 채 3명의 쿠바 병사가 흰색과 빨간 장미로 꾸며진 화환을 들고 오는 것을 말없이 지켜봤다.

면적이 7만2천㎡에 달하는 혁명광장은 원래 109m 높이의 호세 마르티 기념탑이 있는 시민 광장으로 활용됐다가 1959년 쿠바 혁명 이후에 혁명광장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광장 주변에는 체 게바라의 얼굴과 그가 남긴 대표 문구인 '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Hasta la Victoria Siempre)가 외벽에 새겨진 내무부 등 여러 행정부 건물이 모여 있다.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이 매년 5월과 7월에 100만 명이 넘는 관중 앞에서 2∼4시간에 걸쳐 연설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호세 마르티 기념관 방명록에 "모국의 독립을 위해 생명을 던진 호세 마르티에게 헌화하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다.

해방, 자유, 자결을 향한 그의 열정은 오늘날 쿠바인들의 가슴에 살아 있다"고 적었다.

시인이자 언론인이었던 호세 마르티는 19세기 스페인에 맞선 쿠바의 독립영웅으로, 쿠바 국민에게서 정신적 지도자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쿠바 언론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주요 기사로 다뤘지만, 세계적 머리기사로 취급한 서방 언론에 견줘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는 1면에 560자로 된 '오바마 쿠바 공식 방문'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실어 오바마 대통령의 첫날 방문 일정을 간략히 전했다.

TV도 머리기사로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 소식을 전했지만, 재빨리 의학 연구 분야의 업적에 대한 쿠바 관리들의 기자회견 소식과 미국의 금수조치를 비판하는 보도를 연이어 방영했다.

전날 밤 오바마 대통령이 저녁을 먹은 한 식당 인근 건물에서 휴대전화로 찍은 동영상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급속도로 퍼지기도 했다.

동영상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탄 차량이 식당 앞에 도착하자 쿠바 시민들이 '오바마'를 연호하며 환영하는 모습과 오바마 대통령이 손을 흔들어 답례하는 장면이 담겼다.

(멕시코시티·아바나연합뉴스) 국기헌 김지헌 특파원 penpia2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