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전 국정교과서로 회귀하나"

18일까지 진행된 일본 고교 교과서 검정에서 아베 정권이 '입맛'에 맞는 교과서 기술을 출판사 측에 광범위하고 집요하게 요구한 정황이 일본 언론에 소개됐다.

이번 검정에서 일본사 교과서의 경우 출판사의 검정 신청본에 사실상의 수정 지시인 '검정 의견'이 총 206건 붙었는데, 이 중 73건(35%)은 현행 기술과 동일한 내용에 대한 것이라고 아사히신문이 19일 보도했다.

4년전의 문부과학성 검정을 별탈없이 통과한 내용에 대거 '빨간줄'을 쳤다는 얘기다.

아사히는 "이번 검정에서는 정부의 생각과 다른 표현에 수정을 요구하는 검정 의견이 눈에 띄었다"며 "신설된 페이지의 구성이 당초 신청본에서 크게 달라진 경우도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신문은 "일본 정부가 사죄했다"는 위안부 관련 기술에 "법적으로 해결됐다"는 정부 주장이 더해진 것, 난징(南京) 대학살 관련 기술이 대거 변경된 것 등을 사례로 들었다.

짓쿄(實敎) 출판의 경우 검정 과정에서 난징 대학살 피해자 수를 20만 명으로 서술한 도쿄재판(극동군사 재판) 판결 내용과 피해자에게 사죄한 일본군 관계자 발언 등을 삭제하기까지 문부성 조사관과 6차례 협의했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아사히의 취재에 응한 짓쿄출판 교과서 집필자는 마감 이틀 전 조사관이 "더 이상의 논의는 어렵다"며 제시한 안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또 어떤 집필자는 "조사관의 제안을 매번 반영했지만 계속 '퇴짜'를 맞았다"며 "이제까지 누차 검정을 받았지만 이 정도까지 여러번 협의를 한 것은 첫 경험"이라고 말했다.

아사히 신문은 '교과서 검정-강압은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제목의 19일자 사설에서 "교과서는 그때그때 정권의 주장을 주입교육하는 도구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사설은 이어 "정부의 입장을 아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지만 그것을 유일한 정답으로 취급하는 것은 강압일 것"이라며 "전전(戰前·2차대전 패전 이전)의 국정 교과서에 접근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또 도쿄신문의 취재에 응한 한 교과서 출판사 간부는 정부 견해를 기술토록 사실상 강요한 아베 정권의 교과서 검정에 대해 "정치는 다수결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교과서에 쓰면서도 실제로는 '수(數)의 논리'로 결정되고 있다"고 개탄했다.

(도쿄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jh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