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바둑 챔피언 판후이(樊麾) 2단이 14일 오전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인공지능(AI) 알파고와 이세돌 9단과의 대국을 지켜본 소감과 인공지능의 진화에 따른 바둑의 미래 등에 대한 의견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럽 바둑 챔피언 판후이(樊麾) 2단이 14일 오전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인공지능(AI) 알파고와 이세돌 9단과의 대국을 지켜본 소감과 인공지능의 진화에 따른 바둑의 미래 등에 대한 의견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는 3연패하고 자신감 상실…이세돌은 기다리고 기다렸다"
중국규칙 심사위원으로 이세돌-알파고 대국 현장 지켜봐


인간 최고의 바둑기사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대국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세기의 대국'이기에 유튜브로 생중계된다.

그러나 대국 현장은 철저히 통제된 공간에서 진행된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리인인 구글 딥마인드의 아자황 박사, 심판진, 알파고 기술자들만 대국장 안에 들어갈 수 있다.

유럽 프로기사 판후이 2단은 중국규칙 심사위원으로 이세돌과 알파고의 5번기를 모두 가까이서 지켜본다.

2013·2014·2015년 유럽 챔피언에 오른 그는 이세돌보다 5개월 이른 지난해 10월 알파고와 최초로 겨룬 인간 프로기사이기도 하다.

당시 그는 알파고에 다섯 판을 모두 졌다.

14일 서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연합뉴스와 만난 판후이는 "대국장 안에서 재밌는 것들을 많이 본다"며 알파고와 맞서는 이세돌을 보고 느낀 점과 인공지능의 발전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이세돌은 지난 9일부터 13일까지 알파고와 네 차례 대국을 펼쳤다.

1∼3국은 알파고가 완승(불계승)했고, 4국은 이세돌이 극적으로 승리했다.

판후이는 그 과정에서 이세돌의 감정 변화를 느꼈다.

그는 "이세돌은 많은 압박을 느꼈다. 이세돌을 둘러싼 긴장감은 더욱 커졌을 것이다"며 "특히 1국에서 알파고가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을 느끼고 더 그랬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세돌은 2국에서 더 많은 걸 시도하려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알파고가 너무 잘했다.

특히 알파고가 우변 5선에 어깨 짚는 37수로 판을 흔든 것을 두고 "정말 아름다웠다.

인간이라면 하지 않을 수를 뒀다.

바둑의 예술을 봤다"며 "이세돌도 이 수에 놀라워했다"고 돌아봤다.

3국에서 이세돌에게 절실한 대국이었다.

판후이는 "이세돌은 정말 큰 압박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 대국에서 지면 대국 전체에서 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세돌은 싸우기를 원했다"며 "대국을 바라보면서 이세돌의 투지를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이세돌은 '나는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밀어붙였다.

그러나 공격을 하려고 했지만 공격할 기회가 없었다.

아주 어려웠다"며 "이 대국 이후 사람들은 알파고가 인간보다 세다고 말했다"고 떠올렸다.

그러나 이세돌은 포기하지 않았다.

판후이는 4국에 나서는 이세돌을 보고 "편해보였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4국을 떠올리며 "많은 선수는 그저 싸우려고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세돌은 기다렸다.

'때'를 기다렸다.

일격의 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한 방을 날렸다.

그러고는 끝났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세돌은 알파고에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라고 말하는 듯 기다렸다가 정말 좋은 수(78수)를 놓았다.

그리고 무엇인가가 일어났다"며 "그게 진짜 이세돌이다.

정말 굉장한 승리였다"고 미소 지었다.

그는 대국 후 기자회견장에 들어오는 이세돌이 미소 짓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미소가 아니라 내면에서 올라오는 미소였다.

정말 좋았다"고 말했다.

판후이는 5개월 전 자신이 알파고를 상대했을 때 "시간에 쫓겨 실수가 많아졌다.

그리고 3국까지 지고서는 자신감을 잃었다"며 "이 측면에서 이세돌은 정말 강하다.

그는 더 강하게 싸웠다"고 놀라워했다.

하지만 잠시 자신감을 잃은 경험은 발전을 채찍질하는 '동기부여'로 전환됐다면서 "단점은 때때로 장점으로 변한다.

결과적으로 나는 알파고와 대국한 것이 좋다"며 웃었다.

알파고는 5개월 전보다 실력이 좋아져 있었다.

판후이는 "알파고는 지금 아주 강하다.

매일 훈련하고 발전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판후이 역시 알파고와 대국한 이후 실력이 늘었다.

그는 "많은 게 바뀌었다.

무엇보다 '돌' 자체에 집중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돌이 힘을 발휘하려면 어떻게 둬야 할까? 돌의 진정한 힘은 뭘까? 등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면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려고 노력했는데, 나는 이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알파고의 놀라운 수를 보면서 새로운 문이 열릴 것이다.

마음을 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알파고는 고수에게도 좋은 상대"라며 이세돌도 이번 대국을 통해 얻는 것이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이번 대국을 지켜본 사람들은 기술이 발전하면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는 날이 오지는 않을까라는 막연한 두려움에 휩싸이기도 한다.

알파고를 보며 인공지능에 대한 공포감을 느낀 적이 있는지 묻자 판후이는 "전혀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기계가 인간을 통제할 것이라는 주장을 이해할 수 없다"며 "기계는 감정도 없고 게임을 즐긴다는 개념도 없다.

인간을 왜 지배하겠나? 감정이 없는데"라고 인공지능의 발전을 좋게 생각한다는 생각을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최인영 윤보람 기자 abbi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