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권자 눈치보는 대통령…국정공백·권력분열·탄핵유발 우려
인도 간디-싱, 태국 탁신-잉락 조합 등 실패사례도 있어

군부의 반대로 대통령의 꿈을 잠시 접은 미얀마의 '민주화 영웅' 아웅산 수치가 측근을 대통령 후보로 내세우면서, 실권이 없는 대통령과 막후의 실력자가 손발을 잘 맞출 수 있을지 주목된다.

특히 군부가 여전히 막강한 권한을 움켜쥔 상황에서 대리 대통령과 수치가 '엇박자'를 낸다면, 다음 달 출범하는 미얀마의 문민정부에 다시 큰 시련이 닥칠 수도 있다.

수치의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은 10일 수치의 최측근인 틴 쩌(70)를 대통령 후보로 추천했다.

수치와 같은 옥스퍼드대 출신(경제학)인 틴 쩌는 수치의 가택연금 해제 후 운전기사 겸 비서를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틴 쩌는 상하원 의장과 부의장, 상원, 하원, 군부 대표 등 7명이 참여하는 후보 검증위원회의 검증과 664명의 상하원합동회의 투표를 거치면 대통령이 된다.

NLD가 주도하는 차기 미얀마 정부는 틴 쩌가 형식상 최고 통치자로 수치의 생각을 국정에 반영하는 형태의 통치가 예상된다.

그러나 이러한 '대리 통치'는 상당한 취약점을 갖고 있다.

형식상의 대통령과 막후 실권자라는 '2개의 권력'이 국정에 혼란과 공백을 유발할 수 있는데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대통령이 강력한 권한을 행사할 경우 실권자와 마찰을 빚을 수 있다는 것이 대리 통치의 가장 큰 취약점이다.

실제로 미얀마와 이웃한 인도와 태국에서도 대리통치가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 사례가 있었다.

인도에서는 최고 정치가문인 '네루-간디'가의 며느리인 소니아 간디 국민의회당 당수가 만모한 싱 총리를 앞세워 2004년부터 10년간 나라를 다스렸다.

그러나 이들은 2014년 두 번째 선거에서 민족주의 정당인 인도국민당에 참패해 정권을 넘겨야했다.

전문가들은 간디-싱 조합의 경우 2개의 권력축이 혼란을 유발한 경우라고 진단한다.

브루킹스연구소의 테레시타 셰퍼 연구원은 "2개의 권력 축은 곤란한 상황을 만들었고 위험하기도 했다.

특히 일을 추진하고자 하는 싱 전 총리의 성격과 의지가 2개의 권력 축을 서로 경쟁하는 모양새로 만들었다"며 "사람들은 둘 중 누가 더 자신들에게 공감하는지 끊임없이 계산했고, 이들 둘에게 다가가려 했다"고 분석했다.

태국에서는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지지세력을 등에 업고 동생인 잉락 친나왓 전 총리가 2011년 집권했다.

그러나 해외 도피중인 오빠의 명령을 그대로 이행하는 것 아닌가하는 의구심 속에 잉락의 통치는 3년만에 군부 쿠데타로 막을 내렸다.

수치의 상황은 인도와 태국의 사례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곧 여당이 될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은 사실상 '수치의 당'이라고 할 만큼 수치의 장악력이 강하다.

더욱이 수치는 이런 NLD를 이끌고 지난해 총선에서 선출직 의석의 약 80%를 휩쓰는 엄청난 힘을 과시했다.

그러나 수치가 넘어야 할 산은 어찌보면 소니아 간디나 탁신보다 더 높아 보인다.

가장 큰 산은 군부다.

군부는 여전히 상하원 의석의 4분의 1과 국방부, 내무부, 국경경비대 등 3개 부처 통제권을 헌법으로 보장받는다.

또 군부는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국가방위안보위원회(NDSC)에도 부통령과 내무, 국방, 국경경비 장관, 군 최고사령관 등 6명의 위원을 둘 수 있다.

대통령과 부통령, 외무장관 그리고 NLD 소속 상하원 의장 등 5명을 위원으로 두는 수치 측보다 우월하다.

최근 대통령 출마를 위한 헌법개정 논의가 불발된 이후 수치 측과 군부가 냉전에 돌입했다는 관측도 이어지고 있다.

또 실질적인 결정권이 없는 대통령이 막후 실력자의 지시를 따르면 탄핵 조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미얀마 헌법은 대통령이 그 누구보다 우위에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대통령이 누군가의 '꼭두각시' 노릇을 한다면 이는 탄핵이나 위헌소송 회부 대상이 될 수 있으며, 통치권 부재를 이유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겠다는 목소리가 나올 수도 있다.

물론 수치의 NLD는 탄핵소추안을 부결시킬 수 있고 헌법재판소 위원까지 임명할 수 있지만, 이런 문제로 군부와 충돌하면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인도의 간디-싱 사례처럼 수치의 대리 통치가 권력 내부의 경쟁과 분열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특히 민주화 영웅으로 추앙받으면서도 모든 결정을 남에게 맡기지 않는, 어찌보면 독선적으로 비칠 수도 있는 수치의 스타일이 대리 통치 과정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양곤 타가웅 정치학연구소의 소에 민 웅 소장은 최근 미얀마 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수치는 쓰레기 수거와 의원 숙소 문제부터, 심지어 당에 대변인을 세우는 문제까지 스스로 챙기는 스타일"이라고 분석하면서 "따라서 그는 제도적인 틀을 통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반론도 있다.

사업가 출신으로 지난해 총선을 통해 정계에 입문한 NLD 소속 초선의원 텟 텟 카인은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수치는 다른 사람들을 배제하고 중요한 결정을 혼자 내리는 독재 스타일"이라며 "그러나 이는 정권 인수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잡음을 줄이고자 비밀스럽게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해"라고 말했다.

텟 텟 카인은 또 군부와의 마찰설에 대해서도 "우리는 아직 실권을 쥐고 누군가와 협상해본 경험이 없다.

군부와의 마찰설은 경험이 부족한 NLD를 우려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데서 시작됐을 것"이라며 "NLD는 군부와 긴밀한 협조를 통해 정국을 헤쳐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네피도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meola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