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에 미치는 위험성' 입증돼야 낙태 대상

지카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소두증(小頭症)이 의심되는 아기를 임신한 여성에 대한 낙태(인공임신중절수술)가 허용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법 해석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겠지만, 불법이 될 가능성이 크다.

23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모자보건법은 특정 상황을 제외하고는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법은 14조에서 ▲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이 정하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를 비롯해 ▲ 본인이나 배우자가 우생학적,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등을 중절수술 허용 대상으로 나열했다.

전염성 질환과 관련해서는 '풍진, 톡소플라즈마증 및 그 밖에 의학적으로 태아에 미치는 위험성이 높은 전염성 질환'을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의학적으로 태아에 미치는 위험성이 높은 전염성 질환'에 지카 바이러스 감염증이 포함될지 따져봐야 하는데, 적어도 현재로서는 지카 바이러스 감염이 태아에 미치는 영향을 입증할 만한 관련 연구가 많지 않다.

지카 바이러스의 유행은 소두증 신생아 출산의 원인으로 의심받고 있지만, 아직 명확한 연관성은 나오지 않은 상황이며 소두증이 어느 정도 태아에게 위험성을 주는 것인지에 대한 연구도 부족한 실정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전문가 자문을 받아 판단할 필요가 있다"며 "다만 관련 연구 내용만 따져봤을 때 지카 바이러스 감염이 '태아에게 위험성이 높은 전염성 질환'으로 인정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카 바이러스 감염 임신부에 대한 낙태 허용 여부는 감염자가 발생한 해외에서는 이미 뜨거운 논란거리다.

브라질의 경우 무뇌아(신경관 결손 태아)인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낙태를 허용하고 있지만,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된 임신부로 낙태 허용 대상을 넓혀야 한다는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최근에는 자이드 라아드 알 후세인 유엔 인권 최고대표가 지카 바이러스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도록 낙태를 금지하는 법률과 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자 브라질 보건장관은 '소두증 태아 낙태를 허용하지 않고 있는 법을 따를 것'이라고 일축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이미 소두증을 가지고 있지만 성장하고 있거나 이미 성인이 된 사례를 부모나 스스로가 공개하며 낙태 반대를 주장하는 사례도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낙태는 범죄지만, 피임은 덜 사악하다"고 낙태에 대해 반대 의사를 명확히 하기도 했다.

한국의 경우 아직 감염자가 나오지 않았지만, 관련 논의를 통해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사회적 합의를 거쳐서 법에 대한 유권 해석을 내려놓거나 법 개정 작업을 거칠 필요가 있다.

권자영 연세대 산부인학과교실 교수는 최근 정부 브리핑에 참석해 "현재로서는 (지카 바이러스 감염 임신부에 대한 낙태는) 불법"이라며 "관련 부분은 추가로 전문가의 자문을 바탕으로 논의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병규 기자 bk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