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읽기] 대사이클 이론으로 본 '세계 증시 침체기설'
세계 증시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증시가 ‘대안정기(great stabilization)’와 ‘대침체기(great recession)’를 반복함에 따라 이제는 정형화된 사이클로 굳어졌다. 작년 12월 미국 금리 인상 뒤의 세계 증시 혼돈이 대안정기 이후 찾아오는 대침체기가 아닌가 하는 우려가 급부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재닛 옐런이 2014년 2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에 취임한 뒤로 세계 증시는 재차 대안정기에 접어들었다. 2009년 2분기 이후 약 2년 동안 지속된 ‘1차 대안정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각종 공포지수가 안전지수라고 불릴 만큼 투자자를 비롯한 경제주체의 위기의식이 급속히 사라졌다.

[한상춘의 국제경제읽기] 대사이클 이론으로 본 '세계 증시 침체기설'
이 때문에 ‘2차 대안정기’ 다음에 ‘2차 대침체기’가 올 것이란 경고가 위기관리 등 다양한 측면에서 제기돼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작년 5월 이후 중국 증기 급등락 현상 등이 2008년 발생한 금융위기 직전을 연상케 한다며 조만간 세계 증시에 대폭발이 올 것이라는 이른바 ‘폭풍전야설’을 경고한 적이 있다.

길게 보면 최근과 같은 현상은 금융위기 뒤 롤러코스터에 비유될 정도로 세계 증시의 기복이 심했던 추세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사태 직후 세계 증시는 대침체기로 불릴 만큼 큰 폭으로 떨어졌지만, 2009년 2분기부터 2011년 7월까지는 대안정기로 통할 정도로 빠르게 회복했다.

당시 리먼 사태로 시장이 크게 동요하자 많은 전문가가 세계 증시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토록 빠른 속도로 큰 폭의 침체를 겪으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같은 맥락에서 세계 증시가 이듬해 2분기 저점을 찍은 뒤 그토록 빨리 회복할 것으로 예상한 사람도 많지 않았다.

대부분 예측기관과 금융회사들은 빗나간 전망을 뒤늦게 수정하기에 바빴다. 이제는 예측 주기를 ‘연간 또는 반기’에서 ‘분기 또는 수시’로 단축해 떨어진 예측력을 보완해나가고 있다. 그 결과 경기와 주가 예측의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을 뿐 아니라 관련 기관에 대한 믿음과 신뢰도 땅에 떨어졌다.

심리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한 1차 대안정기와 달리 2차 대안정기가 온 가장 큰 이유는 선진국 중앙은행의 과감한 금융완화 정책으로 돈이 너무 많이 풀렸기 때문이다. 제로금리와 양적 완화로 상징되는 선진국의 적극적인 금융완화 정책은 마침내 ‘마이너스 금리 예치제’ 도입으로까지 이어졌다. ‘중앙은행의 만용’이다.

이런 여건에서는 통화완화기조가 바뀔 때는 위험성과 변동성이 다시 확대되면서 대침체기를 맞는다. 특히 옐런 의장 취임 이후 총수요 면에서 소비 투자 수출 등 지출요인과 총공급 면에선 노동 자본 총요소생산성 등 생산함수 구성 항목이 모두 종전 회복기보다 부진해 대침체기가 오면 그 폭이 클 것으로 예고됐다.

금융위기 극복이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힌 상황에서 대침체기가 오느냐 여부는 위기 극복책의 후유증인 ‘애프터 크라이시스’ 문제를 얼마나 잘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대안정기 이후 대침체기가 오느냐는 이 문제에 대한 대응과 극복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 기존 위기국가들의 경험이다.

금융위기 이후 각국이 추진한 위기극복책의 후유증 문제는 크게 보면 두 가지다. 하나는 비상사태에 준하는 위기극복 대책을 추진한 선진국의 재정적자와 국가채무 문제다. 이는 이미 재정위기 형태로 가시화했다.

또 다른 하나는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기 충격이 덜하던 신흥국이 선진국의 위기극복 과정에서 유입된 과다 유동성으로 겪는 후유증이다. 2013년 5월 말 벤 버냉키 전 Fed 의장이 출구전략을 언급한 뒤로 신흥국이 ‘테이퍼 탠트럼(대규모 자금이탈)’에 시달린 것이 대표적인 예다.

애프터 크라이시스가 나타나는 상황에서 위기극복을 지나치게 낙관해 금리 인상 등 긴축기조로 성급하게 돌아서면 어렵게 돋은 ‘싹(green shoots)’이 다시 노랗게 질려 ‘시든 잡초(yellow weeds)’가 될지 모른다. ‘제2의 에클스 실수’(Fed 7대 의장인 매리너 에클스가 1930년대 급작스럽게 기준금리를 올려 경기 회복에 찬물을 끼얹은 것)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실물경기가 회복국면에 깊숙이 진입한 뒤에 출구전략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위기극복이 완전치 못한 상황에서 조기에 출구전략을 추진하면 세계 증시는 어느 순간 대침체기를 맞게 된다. 작년 12월 미국 금리 인상이 너무 성급하지 않았느냐는 비판과 함께 ‘옐런의 실수’란 말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각국 중앙은행은 마치 칼날 위를 걸어가듯 앞으로도 상당 기간 통화정책 완화기조에서 탈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