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마이너스 금리정책이 벌써부터 맥빠진 모습이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3일 강연을 통해 "필요시 추가로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강연 이후에도 도쿄 주식시장 급락세는 바뀌지 않았고 엔화가치는 크게 올랐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이날 "금융시장에서 리스크 회피의 움직임이 재연하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2일 미국시장에서 원유가가 대폭 떨어지고, 이를 기폭제로 리스크 회피 심리가 강화되면서 엔화가 다시 강세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이날 오후 3시50분 현재 엔화가치는 전날보다 달러당 1.11엔 오른 119.52엔을 기록했다.

지난달 29일 이전 수준인 118엔대에 육박하고 있다.

구로다 총재가 과거 두 번에 걸쳐 주도한 대규모 금융완화는 '바주카포'라고 불리며, 대폭적인 엔화가치 하락과 주가상승을 초래했다.

이번의 바주카포 제3탄은 효과가 불확실하다.

시장에서는 "리스크 회피의 흐름을 일거에 전환시키기에는 미흡할 지 모른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벌써 추가조치 가능성이 거론된다.

2일 해외시장에서는 러시아나 중동 등 주요 산유국의 협조 감산에 대한 기대가 희미해진 것을 계기로 원유가격이 배럴당 30달러 이하로 떨어졌고, 주가는 하락했으며, 채권가격은 올라갔다.

전형적인 리스크 회피 장세의 모습이다.

외환시장에서도 1월29일 일본은행의 마이너스 금리정책 도입 결정 뒤 달러당 120엔대까지 내려갔던 엔화가치가 이날 다시 119엔대로 상승했다.

미국의 추가 금리인상을 둘러싼 상황이 불투명한 것도 엔화가치 하락을 막는 요소로 지목된다.

미국 정책금리의 장래를 점치는 금리선물시장에서는 금리인상 기대가 한층 더 후퇴하고 있다.

3월의 미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미연방준비제도(Fed)가 추가 금리인상을 단행할 확률은 12%로, 전날 18%보다 더 낮아졌다.

올해 12월말까지의 금리인상 횟수도 0.7로 예측되고 있다.

시장은 미국이 한 번도 금리인상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장기금리도 작년 4월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인 1.8%까지 내려갔다.

다나세 준야 JP모건체이스은행 수석 외환전략가는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정책으로 금리를 내려도, 일본과 미국의 금리 차이가 엔을 끌어내릴 만큼 충분히 확대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며 엔화 강세 가능성을 예측했다.

일본은행의 시라카와 마사아키 총재 시대인 2008년 금융위기나 2011년 이후의 유로 위기가 발생했을 당시에도 급격한 엔고가 진행되면서 일본은행은 금융완화를 되풀이했지만, 엔고의 흐름을 역전시키기에는 미흡했던 것으로 평가됐다.

미즈호은행 가라카마 다이스케 수석 시장분석가는 "처음부터 세계의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큰 테마 앞에서는 당사자가 아닌 나라(일본)의 중앙은행이 아무리 완화정책을 펴도 흐름을 바꿀 수는 없다"고 말했다.

물론, 구로다 총재가 2013년 4월, 2014년 10월 두 차례에 걸쳐 단행한 대규모 금융완화는 모두 대폭적인 주가상승, 엔화가치 하락을 불렀다.

그런데 당시는 세계경제가 호전되고 있는 시기여서 타이밍이 좋았다.

현재는 신흥국 경제가 감속하고, 호조이던 미국 경제에 미묘한 분위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번 마이너스 금리 도입이 엔고를 억누르기에는 효과가 제한적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서울연합뉴스) 이춘규 기자 taei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