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잉원과 민진당에 경고 "92공식 유지" 촉구
대만 선거일에 AIIB 개소, 신문 1면은 시진핑이 장식

중국이 독립 성향의 민진당 정권의 압승으로 끝난 대만 총통선거 결과에 '쓰린 속내'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마잉주(馬英九) 현 대만 총통과 지난해 11월 역사상 첫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정상회담까지 하며 양안관계의 현상유지에 공을 들인 것이 무색하게도 결과는 집권당인 국민당이 참패하고 차이잉원(蔡英文) 민진당 후보의 압승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차이잉원의 차기 총통 당선으로 중국으로서는 양안 관계의 기본 틀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92공식'(九二共識·1992년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각자 명칭을 사용하기로 한 합의)의 유지 여부도 낙관할 수 없게 됐다.

선거 결과에 대한 중국의 쓰린 속내와 실망감, 우려는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물론 언론 보도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중국은 대만 선거 결과가 나온 직후 공산당 중앙 대만공작판공실 및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공동 명의로 발표한 성명에서 "대만에 대한 국정방침이 대만 선거결과에 따라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성명은 "'92공식'을 지속적으로 견지하고 어떤 형태로든 대만독립을 위한 분열활동에 반대할 것"이라며 92공식을 공식적으로 인정치 않고 있는 차이 당선인을 향해 경고성 메시지를 보냈다.

성명에는 차이 당선인을 향한 축하나 환영, 기대의 메시지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중국이 마잉주 현 총통이 당선됐던 2008년 3월과 재선에 성공했던 2012년 1월 발표한 성명과는 크게 대조적이다.

중국은 2008년 3월 "양안 동포들의 공통적인 희망인 양안 관계의 평화로운 발전을 기대한다", 2012년 1월 "(마 총통이 집권한) 최근 4년간의 사실은 양안 관계의 평화적 발전이 정확한 노선일 뿐 아니라 대만 동포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며 환영과 기대의 메시지를 피력했었다.

이번에 발표된 성명은 천수이볜(陳水扁) 당시 민진당 후보가 총통에 당선된 2000년 3월 "우리는 그의 말과 행동을 관찰할 것"이라고 경고성 메시지를 던졌던 것을 연상케 한다.

역사의 시계가 16년 전으로 돌아간 것이다.

실제로 천수이볜 전 총통이 집권한 2000~2008년에 대만은 급진적인 독립 노선을 추구해 양안 관계에는 상당한 파고가 일었었다.

현재로서는 차이 당선인이 양안의 '현상유지' 입장을 밝혀왔기 때문에 천수이볜 집권 때처럼 심각한 갈등까지 빚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중국으로서는 갈등의 불씨를 사전에 차단할 필요가 있다.

중국 언론의 보도 태도에서도 이런 점이 쉽게 드러난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 자매지인 환구시보(環球時報)는 17일 인터넷에 게재한 사설에서 "대만 민중이 차이잉원을 선택한 것이 대만 독립을 선택했다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차이잉원이 천수이볜 당시의 길을 답습하는 것은 '죽음의 길'(死路)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관영 신화통신도 논평에서 "양안관계의 평화발전이란 양호한 국면이 대만 정국의 변화로 변하지 않기를 희망한다"며 "양안관계의 평화로 말미암은 혜택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통신은 "양안관계의 주도권은 시종일관 대륙(중국)의 손에 있었다"며 '뜬구름이 눈을 가려도 두렵지 않은 것은 내 몸이 가장 높은 층에 있기 때문'(不畏浮云遮望眼, 自緣身在最高層<불위부운차망안, 자연신재최고층>)이란 시를 인용하기도 했다.

인민망(人民網)도 칼럼을 통해 "대만 선거결과를 보고 양안관계의 발전에 관심있는 사람 다수가 우려와 초조감을 나타내고 있다"면서도 "양안 관계는 중국이 주도권을 갖고 있으며 양안관계의 평화발전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강조했다.

홍콩의 친중국계 신문 대공보(大公報)도 17일 대만 상인들을 인용, 민진당 집권 이후 양안간 경제발전에 우려의 목소리를 나타냈다.

중국이 대만 선거일인 16일을 국제금융기구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개소식 날짜로 잡은 것에도 대만 선거 결과를 우려하는 중국의 '쓰린 속내'가 담겨 있지 않겠느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AIIB는 지난달 말 출범에 필요한 조건을 마무리한 뒤 개소식 날짜는 중국이 직접 선택해 각국에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개소식에 참석해 AIIB를 공식출범시킨 소식은 17일 발행된 인민일보, 신경보(新京報), 경화시보(京華時報) 등 주요 신문 1면을 장식했다.

대신 이들 신문에 대만 총통선거 관련 뉴스는 중국 당국의 반응 위주로 짤막하게 보도되는데 그쳤다.

이밖에 대만 선거 개표 즈음에 중국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서 차이잉원과 '대만 독립론자 논란'에 휩싸인 한국 걸그룹 트와이스의 대만 출신 멤버 '쯔위'의 이름이 금지 검색어로 포함된 것에서도 중국의 불편한 속내가 느껴진다.

(베이징연합뉴스) 홍제성 특파원 js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