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핵문제 언급과는 대조적…'북핵불용' 묵언으로 재확인
고강도 대북제재 시사…"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줄 가능성"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신년 국정연설문에 의외로 '북한'이라는 낱말이 빠졌다.

북한이 '수소탄'이라고 주장하는 4차 핵실험까지 감행한 마당에 오바마 대통령이 올 한해의 대외 정책 기조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북'자도 꺼내지 않은 것이다.

그동안 어떤 식으로든 북핵 문제가 거론될 것으로 예상했던 워싱턴 외교소식통들 사이에서는 이 같은 '무(無) 언급'이 오히려 뉴스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 문제를 신년 국정연설문에서 언급하지 않은 것은 2014년 이후 3년째다.

가장 마지막으로 언급한 것은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한 다음 날인 2013년 2월12일 국정연설에서 "북한 정권은 국제의무를 준수함으로써 안전과 번영을 얻을 수 있다.

이런 도발 행위는 자신만 더 고립시킬 것"이라고 경고한 것이다.

현재로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을 언급하지 않은 정확한 경위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차원에서는 초안 작성과정에서 북핵문제를 포함시킬 것을 건의했으나, 오바마 대통령이 최종 문안을 다듬는 과정에서 '전략적으로' 뺐을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일단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을 거론하지 않은 것을 놓고 의도적으로 북한을 '무시' 또는 '외면'하려는 전략으로 풀이하는 시각이 우세하다.

다시 말해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통해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과 미국을 향해 핵 위용을 과시하고 나섰지만,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이를 '의미있게'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을 내보인 것이라는 얘기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했다고 국정연설을 통해 즉자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오히려 미국의 관심을 끌어보려는 북한의 의도를 그대로 따라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 외교소식통은 "오바마 대통령은 그동안 여러 계기에 북핵 불용 원칙과 '병진 노선'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확인했기 때문에 더이상의 메시지가 필요없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며 "북핵을 아예 언급하지 않은 것은 기존의 입장과 원칙을 묵언으로 다시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 같은 '의도'는 국제비확산 체제 측면에서 '닮은 꼴'의 도전과제가 되고 있는 이란 핵문제를 상대적으로 의미있게 거론한데서도 읽힌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문에서 "우리는 국제연합을 구축하고, 제재와 원칙있는 외교를 통해 핵무장한 이란을 방지하고 있다"며 "이란은 자체 핵프로그램을 철회하고 우라늄 재고를 해외 반출했고, 그래서 세계는 또다른 전쟁을 피했다"고 밝혔다.

나름대로 핵포기 의지를 표명하며 협상의 장으로 나온 이란은 '평가'해주면서도 오히려 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북한은 아예 '도외시'하는 태도를 취한 것이다.

이미 4차 핵실험에 따라 북핵 대응논의가 '말'보다는 '행동'에 들어선 국면이라는 점도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에서 새로운 제재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다 미국 의회가 대북제재 강화입법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오바마 행정부도 더이상 '메아리' 없는 메시지를 보내기보다는 확실한 '액션'을 취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또 다른 외교소식통은 "이미 실질적으로 고강도의 대북 제재 조치를 밟아나가는 과정에서 북한에 대해 새로운 메시지를 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국정연설문의 곳곳에 북한을 겨냥한 듯한 언급을 해 주목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우선 미군을 "세계 최강의 군대"라고 거론한 뒤 "어떤 국가도 우리와 우리의 동맹을 감히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것이 파멸에 이르는 길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이 아무리 핵과 미사일 위협을 한다고 하더라도 세계최강의 미국이 안전보장을 약속한 동맹국인 한국을 감히 공격할 수 없고, 만일 공격을 감행한다면 결국 자멸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줬다는 해석이 나온다.

"오늘날의 세계에서 우리는 악의 제국보다 쇠약해가고 있는 국가들(failing states)들에 의해 더 위협받고 있다"고 언급한 대목도 주목된다.

여기서 '쇠약해가고 있는 국가들'이란 패권확장 움직임 속에서 경제력이 약화되고 있는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내전이 한창 전개되고 있는 시리아뿐만 아니라 북한을 언급한 것이라는 유추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1월 22일 유튜브스타 행크 그린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잔혹하고 폭압적이며 주민을 제대로 먹이는 것조차 할 수 없다"며 "정권(북한)이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단언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13일 오후 워싱턴D.C.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리는 벤 로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수석보좌관의 기자회견이 주목받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NSC 차원에서 북핵 문제에 대한 대응방향과 원칙을 다시 표명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노효동 특파원 rh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