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경제 분야 관계 단절…자국 대사관 방화-폭격 공방

중동의 '숙적'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정치·외교·경제 등 군사적 수단만을 제외한 사실상 전방위에서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중동 정세가 살얼음판이다.

사우디가 이란으로 기울던 역내 주도권을 되찾고 내부 반대 세력을 잠재우려고 던진 시아파 집단 처형이라는 승부수가 보복의 악순환을 일으키면서 일파만파고 번지는 것이다.

사우디는 2일(현지시간) 국제 사회의 만류에도, 반정부 운동을 벌이던 국내 시아파 유력인사들을 테러 혐의로 사형을 집행했다.

여론은 '사우디가 너무 나갔다'는 분위기였으나 바로 그날 밤 이란의 과격 시위대가 수도 테헤란의 사우디대사관과 제2도시 마슈하드의 사우디 총영사관을 습격, 방화하는 돌발 사건이 벌어졌다.

공교롭게 국제 여론에 영향이 큰 미국과 영국이 각각 1979년과 2011년에 이란 주재 자국 대사관을 같은 방식으로 점거당했던 터라 사우디에 불리했던 흐름은 하루 만에 중화됐다.

사우디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3일 밤 전격으로 이란과 외교관계 단절을 선언하면서 이란과 전선을 확대했다.

이와 함께 이란으로 오가는 항공편과 교역을 중단하고 자국민의 이란 여행도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외무부와 유력 정치인의 비난 발언 정도로만 '방어'하던 이란은 7일 반격의 계기를 찾는다.

사우디 전투기가 6일 밤 예멘 사나의 이란 대사관을 고의로 폭격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AP통신은 현장 목격자를 인용해 이란 대사관 건물에 폭격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고 보도했으나, 이란 언론들은 벽 일부가 무너지고 직원들이 다쳤다고 전했다.

사우디 역시 전세가 뒤집힐 수도 있는 이란의 주장을 즉시 부인했다.

그러나 아미르 압돌라히안 이란 외무차관은 7일 "수시간 안에 유엔에 대사관 폭격 건에 대한 보고서를 내겠다"면서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사우디와 여론전에서 약점이었던 이란 주재 사우디 외교공관의 공격 사건을 그대로 되갚는 맞불을 놓은 셈이다.

이란은 동시에 사우디에서 생산된 물품 수입을 금지하고 사우디 메카에서 행하는 비정기 성지순례(움라)도 당분간 보내지 않겠다는 보복 조치를 단행했다.

종파와 관계없이 같은 무슬림의 5대 행동 양식 중 하나인 성지순례를 '보이콧'한 것은 상당히 수위가 높은 조치다.

사우디가 1988년 이란과 외교관계를 끊었을 때 이란 국적자에게 성지순례 비자를 내주지 않는다고 했다가 역풍을 맞았을 정도로 이는 종교적으로 예민하다.

중동의 양강이자 수니파와 수니파의 맹주인 사우디와 이란의 이번 대치가 실제 군사적인 충돌로까지 번질 가능성은 아직 낮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럼에도, 양국의 공방은 한동안 위태롭게 이어질 전망이다.

이란 핵협상 타결과 '이슬람국가' 사태 해결을 고리로 사우디 일변도의 미국 중동 정책이 급변하면서 조성된 새로운 중동 판도를 고려하면 이번 파워게임에서 사우디와 이란 모두 밀려서는 안 되는 처지인 탓이다.

(두바이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hska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