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생산 카르텔'과 '죄수의 딜레마'로 본 유가 전망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증시가 국제유가 움직임에 좌우되는 천수답(天水畓)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 등 각국 대표 주가지수에 에너지 비중이 높은 요인도 있지만 유가가 ‘파이널 드로(final draw)’ 국면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파이널 드로란 전쟁에서 뚫리면 패전과 직결되는 최후 방어선으로 재테크에서는 ‘마지노선 붕괴’를 말한다.

국제유가 급락은 세계경제에 커다란 파장을 몰고 오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산유국은 악화된 재정을 보충하기 위해 오랜만에 국채를 발행했다. 베네수엘라, 브라질 등 원유 수출국은 경제위기에 몰린 지 오래다. 각국 경제에 ‘D 공포’를 몰고 와 종전 경제이론과 통화정책의 뿌리를 흔들어놓고 있다.

한국 경제에 미치는 충격도 그 어느 국가보다 크다. 국내 건설사의 중동 수주뿐 아니라 대(對)중동 수출도 급감했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위기가 잇따르자 피난처 목적으로 들어왔던 사우디아라비아 등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의 국부펀드 자금이 국내 증시를 빠져나가면서 외국인 매도세를 주도하고 있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생산 카르텔'과 '죄수의 딜레마'로 본 유가 전망
최근 유가 움직임과 관련해 두 가지 의문점이 남는다. 하나는 OPEC이 왜 감산을 통해 유가를 떠받치려고 노력하지 않느냐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왜 비OPEC 산유국도 감산은 고사하고 증산에 열을 올리느냐는 것이다. 미국만 하더라도 전략원유 비축분을 풀고 오랫동안 묶어온 대륙붕 개발을 허용하는 조치를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OPEC은 생산 카르텔이다. 회원국 간 결속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원유 수요의 비탄력성이다. 감산을 통해 유가도 끌어올리면서 원유판매대금을 늘리려면 원유 수요의 가격탄력성이 ‘비탄력적’이어야 한다. 만약 탄력적이라면 감산하더라도 유가 상승폭보다 원유 수요 감소폭이 더 크게 줄어 원유 판매대금이 감산 이전보다 줄어드는 자충수를 두게 된다.

수요의 가격탄력성은 특정 재화의 가격이 변하면 그 재화의 수요량이 얼마나 변동하는가를 나타내는 지표다. 수요량 변동량(ΔQ/Q)을 가격 변동폭(ΔP/P)으로 나눠 산출한다. ‘1’보다 크면 ‘탄력적’, 작으면 ‘비탄력적’이라 부른다. 대체재가 많아질수록 탄력적으로 변한다.

그림(OPEC 카르텔 붕괴)에서 ‘D1’은 탄력적, ‘D2’는 비탄력적인 원유수요곡선이다. OPEC 회원국이 감산하면 원유공급곡선은 S1에서 S2로 좌상향으로 이동하게 된다. 각각의 원유판매대금은 ‘D1’일 때에는 □OQ1E1P1으로 감산 이전의 □OQEP보다 작아지고, ‘D2’일 때에는 □OQ2E2P2로 훨씬 커지게 된다.

1960년 9월 창립된 OPEC은 두 차례의 오일 쇼크가 발생한 1980년대 이전까지 그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 그 후 대체에너지 개발이 속속 이뤄지면서 국제원유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지고 원유수요곡선도 탄력적으로 변해 감산하더라도 원유판매대금이 늘어나지 않았다. 특히 미국이 셰일가스 개발 등으로 원유 판매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이런 경향이 더 심해지고 있다.

또 하나의 의문점은 비OPEC 국가가 유가 급락에도 불구하고 증산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간단한 게임이론인 ‘죄수의 딜레마’로 풀어보자.

국제원유시장은 OPEC과 비OPEC 국가로 양분돼 갈수록 비OPEC 국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는 추세다. 두 시장 참여자가 쓸 수 있는 전략을 ‘감산’과 ‘증산’밖에 없다고 가정하면 답은 명확하다. OPEC 회원국과 비OPEC 국가가 감산하면 최소한 유가는 오른다. 하지만 상대방이 증산하면 오히려 감산에 참여한 시장 참여자만 손해를 보게 된다.

특히 원유공급물량이 적체된 상황에서는 감산한 국가가 유가와 생산량이 동시에 떨어져 원유판매대금이 급감하고 상대방에게 주도권도 빼앗기게 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모두 증산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게임 결과(‘내시균형’이라 부른다)가 도출된다.

앞으로 유가는 공급 측 요인보다 수요 측 요인에 의해 좌우될 것으로 예상된다. 공급 요인으로 유가가 오르려면 대형 산유업체가 파산해야 한다. 하지만 파리 신(新)기후변화체제에 따른 화석연료 규제 강화, 중국 등 세계경기 둔화, 미국 금리인상 이후 달러 강세에 대한 기대 등을 감안하면 원유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대부분의 예측기관이 ‘파이널 드로’라 여겼던 배럴당 40달러가 붕괴된 유가가 내년에 더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달러 밑으로 급락할 것으로 보는 예측기관도 있어 주목된다. 당분간 글로벌 증시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는 국제유가 움직임이 최대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