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살아난 디즈니, M&A로 '미디어 왕국'
월트디즈니가 10년 만에 확 달라졌다. 2004년 미국 최대 케이블TV회사 컴캐스트의 적대적 인수 위협에 시달리고, 애니메이션 ‘슈렉’을 제작한 드림웍스에 밀려 ‘몰락한 만화왕국’이란 얘기를 듣던 월트디즈니가 지금은 시가총액 1780억달러(약 209조원)에 이르는 세계 최대 미디어그룹으로 발돋움했다.

주가는 10년간 다섯 배 이상 올랐고, 순이익은 2015회계연도에 84억달러로 세 배 이상 늘었다. 2005년부터 월트디즈니를 이끈 밥 아이거 최고경영자(CEO·사진)의 대담하면서도 세심한 인수합병(M&A) 덕분이란 평가가 나온다.

월트디즈니는 2006년 픽사를 74억달러, 2009년 마블엔터테인먼트를 40억달러, 2012년 루카스필름을 41억달러에 인수했다. 최근 흥행대작인 ‘겨울왕국’ ‘아이언맨’ ‘어벤져스’ 등이 모두 인수를 통해 얻은 결실이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개봉한 영화 ‘스타워즈’는 더없이 강력해진 월트디즈니의 힘을 잘 보여준다”며 “영화에서 만화, 완구, 게임, 테마파크로 이어지는 스케일에 어떤 경쟁자도 디즈니와 쉽게 맞붙을 수 없다”고 평가했다.
10년 만에 살아난 디즈니, M&A로 '미디어 왕국'
지난 18일 미국 캐나다에서 개봉한 10년 만의 스타워즈 신작은 20일 현재 2억3800만달러(약 2818억원)를 벌어들여 6월 개봉한 ‘쥬라기월드’가 세운 2억880만달러 기록을 뛰어넘었다. 이코노미스트는 디즈니가 스타워즈 영화 티켓 판매 수입으로 20억달러, 캐릭터·완구 상품 판매로 50억달러를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했다.

픽사와 마블, 루카스필름은 월트디즈니의 효자가 됐지만 M&A가 이뤄질 때만 해도 크게 환영받지 못했다. 픽사는 1년에 영화 한 편 정도를 내놓았기 때문에 74억달러란 인수 금액은 지나치게 높다는 비판을 받았다. 마블을 인수할 때에는 스파이더맨과 엑스맨의 저작권을 다른 영화사에 빼앗긴 채 아이언맨과 캡틴아메리카 토르 등 ‘B급 히어로’만 데려온다는 비아냥을 들었다. 루카스필름도 스타워즈와 인디아나존스라는 걸출한 대작 콘텐츠를 갖고 있었지만 새 영화를 제작하지 않고 있던 상태였다.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던 M&A는 아이거 CEO의 세심함과 장기적인 안목을 통해 블록버스터 상품으로 거듭났다. 드림웍스와 경쟁하기 위해선 꼭 픽사가 필요했던 아이거 CEO는 “픽사의 독립성을 지키고 매번 흥행실적만을 고려해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만 만들지는 않겠다”는 조건을 제시해 매각을 주저하던 스티브 잡스 당시 픽사 CEO로부터 동의를 얻어냈다.

잡스의 신뢰를 얻은 아이거 CEO는 이후 마블과 루카스필름을 인수할 때도 잡스의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이코노미스트는 “마블 창작팀은 아이거 CEO의 믿음에 보답해 B급 히어로들을 A급 히어로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다”며 “2012년 개봉한 어벤저스는 전 세계적으로 15억달러의 수입을 벌어줬다”고 설명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