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인도 파워'…구글·MS·어도비 CEO는 모두 인도계
미국 실리콘밸리에선 지금 ‘인도 열풍’이 불고 있다. 월스트리트 금융가를 움직이는 큰손이 유대인이라면 실리콘밸리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인도인에게서 나온다. 1970년대부터 미국으로 건너간 인도인들은 USB와 인텔 펜티엄 칩을 개발했고, 썬마이크로시스템즈 등의 회사를 창업했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내로라하는 미국 정보기술(IT) 회사의 수장도 인도 출신이 맡고 있다.

구글·MS·어도비 모두 인도 출신 CEO

인도인이 미국 IT기업 최고경영자(CEO)에 오르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 됐다. 가장 최근 미국 IT기업에 오른 인도 출신은 지난 10월 구글 CEO에 취임한 순다르 피차이다. 1972년 인도 남부 도시 첸나이에서 태어난 그는 인도공과대학(IIT)을 졸업하고 1993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스탠퍼드대에서 재료공학과 전기공학을 공부하고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2004년 구글에 입사한 그는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의 눈에 띄어 고속 승진을 거듭해 약 11년 만에 구글 CEO가 됐다.

작년 2월엔 MS CEO가 인도 출신인 사티아 나델라로 바뀌었다. 이 밖에 사진편집 프로그램 포토샵으로 유명한 어도비시스템즈의 산타누 나라옌, 반도체회사 샌디스크의 산제이 메흐로트라, 반도체 파운드리업체 글로벌 파운드리의 산자이 자 등이 대표적인 인도계 IT기업 CEO다. 미국 밖으로 범위를 넓히면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후계자로 공식 지명된 전직 구글 임원 출신 니케시 아로라 소프트뱅크 부회장, 노키아의 라지브 수리 CEO 등이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요즘 전 세계 IT업계에선 인도 태생 경영자들이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리콘밸리에서 인도인의 강세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미국 카우프먼재단에 따르면 2006~2012년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한 이민자 가운데 인도 출신이 32.0%로 가장 많았다. 공동 2위를 차지한 중국 출신과 영국 출신의 비율은 각각 5.4%에 불과했다.

1세대들의 성공이 ‘인도 열풍’ 뒷받침

실리콘밸리에서 인도인의 강세는 하루아침의 일은 아니다. 미국으로 이주한 수많은 인도계 엔지니어들의 땀과 노력이 지금의 ‘인도 열풍’을 불러온 토양이 됐다. 1990년 인텔에 들어가 USB를 개발한 아제이 바트, 인텔 펜티엄 프로세서의 아버지라 불리는 비노드 담, 1982년 썬마이크로시스템즈를 공동 창업한 비노드 코슬라, 1996년 핫메일을 개발한 사이버 바티아 등이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노하우와 인맥, 자금을 후배 인도인들에게 나눠주면서 성공을 돕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실리콘밸리에는 강력한 인도인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썬마이크로시스템즈를 세운 비노드 코슬라는 2004년 자신의 이름을 딴 벤처캐피털인 코슬라벤처스를 세워 유망한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그는 또 미국 전역뿐 아니라 전 세계에 지부를 둔 인도계 사업가·투자자들의 모임인 ‘TiE’를 조직해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인도의 문화적 전통도 도움이 됐다. 실리콘밸리의 인도계 네트워크인 ‘인도기업가협회’의 벤크데시 수클라는 “인도에서는 이슬람교도 옆집에 힌두교도가 살고, 전문직 종사자 옆집에 방직공이 사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며 “우리는 사람의 다름을 우월하거나 열등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2007년 미 서던뉴햄프셔대 연구진이 미국 임원과 인도 임원들을 비교·연구한 결과 인도 임원들이 리더십 부문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연구진은 “인도 임원들은 야단법석을 떨지 않으면서 묵묵히 성과를 거두고 탄탄한 조직을 만든다”고 평가했다.

영어가 유창하고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지만 인도 내에선 성공의 기회가 많지 않은 점도 역설적으로 실리콘밸리에서 인도인의 강세를 불러온 요인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