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한복판에서 대규모 테러가 벌어진 뒤 파리 시민은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에 ‘#포르트 우베르트(porte ouverte·열린 문)’라는 태그와 함께 자신들의 집주소를 공개했다. 테러 피해자들이 자신의 집에 와서 쉬어도 좋다며 팔을 벌린 것이다. 따뜻한 관용(톨레랑스)의 나라 프랑스다운 박애주의 정신이 빛났다.

그러나 시야를 넓혀 유럽 전체를 보면 정반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 테러의 일부 용의자가 난민으로 섞여 프랑스에 들어온 것이 밝혀지면서 난민 입국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이슬람 혐오 현상(이슬라모포비아)도 거세졌다. “파리 테러가 유럽의 난민정책을 바꿀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당장 EU 국경 문 닫자"…유럽, 이슬람 혐오증 커진다
◆용의자 2명, 난민 위장 입국

AFP통신과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은 파리 테러 용의자 2명이 그리스에서 난민으로 등록한 뒤 프랑스에 입국했다고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니코스 토스카스 그리스 시민보호부 장관은 “테러 현장에서 발견된 시리아 여권 소지자 1명이 지난달 3일 레로스섬을 지나갔다”고 밝혔다. 그리스 경찰에 따르면 다른 용의자 1명도 지난 8월 그리스를 경유해 입국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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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스트가 난민으로 위장해 잠입할 가능성은 꾸준히 제기됐다. 지난달에는 이탈리아에서 추방됐던 튀니지 출신 알카에다 테러범이 난민 행렬에 섞여 이탈리아에 다시 들어가려다 체포되기도 했다.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 행렬은 갈수록 길어지고 있다. UN난민기구에 따르면 올 들어 지중해를 통해 유럽에 들어온 난민 수는 81만명을 넘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2017년까지 300만명이 들어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난민 수용 불가” 목소리 커져

대규모 난민 유입에 부담을 느끼고 있던 유럽 지도자들은 파리 테러를 계기로 잇달아 난민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콘라드 시만스키 폴란드 EU 담당 장관은 우파 웹사이트 ‘더블유(w)폴리티체’에 올린 글에서 EU의 난민 분산수용 계획을 이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안드레이 바비스 체코 부총리도 “유럽의 국경을 닫아야 한다”며 “지금 당장 행동에 옮기자”고 주장하고 나섰다.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는 “결코 간단하지 않을 역사적인 (테러와의) 전투를 치러야 하는 만큼 이탈리아 안보를 위해 국가 전체 차원에서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에서도 반(反)난민 기류가 강해지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난민포용 정책에 대한 반발이 커지면서 독일은 최근 조건 없는 수용 정책을 바꿔 망명 신청 절차를 정식으로 밟도록 하는 더블린조약을 적용하기로 했다. 독일 기독사회당(CSU)의 마르쿠스 죄더는 “파리 테러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더 이상 불법적이고 통제되지 않는 난민을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우향우’ 가속화할 듯

몰려드는 난민으로 인해 유럽 정치권에선 잇달아 우파가 득세하고 있다. 지난달 스위스와 폴란드에서 열린 총선에서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우파 정당이 연이어 승리했다.

파리 테러를 계기로 유럽의 ‘우향우’ 경향은 가속화할 전망이다. 프랑스에서는 다음달 지방선거가 열린다. 무슬림 이민자를 배척하는 프랑스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대표가 노르파드칼레 지역에서 당선될 가능성이 높고, 그 조카인 마리옹 마르샬 르펜도 남프랑스 지역 유력 후보로 꼽힌다고 FT는 전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