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승리가 확실시되면서 반세기에 걸친 군부 독재가 끝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아시아 최빈국으로 꼽히던 미얀마의 경제 수준은 민주화 세력이 힘을 모아가는 동안 빠르게 성장했다.

연간 8% 대의 높은 성장률을 보이면서 꾸준히 성장해 온 미얀마는 올해 구매력평가(PPP)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5천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 군부 독재를 경험했던 한국과 칠레도 PPP 기준 1인당 GDP가 5천 달러 선을 넘었을 때 민주화를 이뤘다.

역사적으로 보면, 소득수준이 너무 낮으면 독재 또는 권위주의 정권에 저항할 국민 의식이 생기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소득이 일정수준을 넘어서면 민주화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즉, 경제발전이 민주화를 이뤄내고 민주화는 다시 경제발전을 촉진하는 선순환이 가능해진다.

미얀마도 민주정권이 들어서면서 경제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 미얀마 '민주화 경제 문턱' 넘었나…한국 6월 항쟁 상황과 유사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미얀마의 올해 PPP 기준 1인당 GDP 전망치는 5천164 달러(약 599만원)로, 지난해 4천752 달러에서 8.72% 늘었다.

구매력평가 기준 GDP는 국가별 물가를 감안해 실제 구매력을 반영한 수치다.

미얀마의 1인당 명목 GDP는 지난해 1천228 달러로 아직 낮은 편이지만 국민들이 직접 느끼는 소득 수준은 상대적으로 높다는 의미다.

한국에서도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며 6월 민주항쟁이 일어난 1987년에 PPP 기준 1인당 GDP가 5천281 달러였다.

한국에서 민주화 요구 목소리는 종전부터 있었지만, PPP 기준 1인당 GDP가 4천 달러를 돌파한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한층 뚜렷해졌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은 1980년대 들어 강해졌지만 학생조직과 노동조합, 재야단체 위주로 진행되는 등 대중적으로 확산되지는 않다가 1987년 1월 서울대생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같은 해 6월 연세대생 이한열군의 시위도중 사망 사건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번졌다.

항쟁의 양상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을 발표했고 한국에서는 민주주의 정치가 뿌리를 내리게 됐다.

◇ 칠레 독재정권도 구매력 5천 달러 시기와 맞물려 쇠락
칠레의 독재정권이 무너진 상황도 이와 유사하다.

칠레의 군사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를 몰아낸 1989년 PPP 기준 1인당 GDP는 5천528 달러였다.

1973년 대통령궁에 포격을 가해 살바도르 아옌데 전 대통령을 몰아낸 피노체트는 "칠레에서는 이파리 하나도 내 허락 없이 움직일 수 없다"며 20년 가까이 무소불위의 힘을 휘둘렀다.

피노체트 군사정권 치하에서 숨지거나 실종된 사람은 3천200여명, 불법체포·감금·고문 피해자는 3만8천여명에 이른다.

피노체트는 2006년 91세의 나이로 숨질 때까지 천수를 누렸지만 군사정권 기간에 고문을 견디다 못해 숨지고서 심장마비로 처리된 사람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독재 정권은 1989년 12월 대선에서 야당 후보인 파트리시오 아일윈이 당선되면서 끝났다.

당시 칠레의 PPP 기준 1인당 GDP는 처음으로 5천 달러를 넘었다.

1985년까지 3천 달러 선에서 머무르던 PPP 기준 1인당 GDP는 1986년 4천 달러를 돌파했고 두 해 만에 5천 달러를 넘겼다.

1988년 피노체트 대통령 집권 연장에 대한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에서 반대표가 다수를 차지하고, 1989년 대선에서 피노체트가 낙선했다.

◇ 민주화가 다시 경제성장으로…수치, '미얀마의 문' 열어젖힐까
민주화와 경제성장의 연관성이 높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미얀마의 민주화는 향후 경제 성장에도 도움이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NLD가 다수를 차지하게 되면 테인 세인 대통령이 일부 진행해 온 개혁개방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얀마 정부는 변동환율제를 도입하고 외국인 투자제한 완화, 외국은행 진출 허용 등 제한적인 개방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NLD는 총선 이전부터 테인 세인 대통령의 개혁개방이 부족하다고 비판해왔다.

또 그간 군사정권을 인정하지 않던 미국 등 서방 국가의 빗장이 풀릴 것이라는 점도 미얀마 경제에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안유석 코트라(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아시아대양주팀 차장은 "미얀마가 민주화를 이루면 미국이 후진국에 수입 관세를 면제해주는 일반특혜관세제도를 적용할 것으로 본다"며 "또 지금은 외국인 투자와 내국인 투자 분리돼 있는데 차별 없이 이뤄지는 통합투자법 진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율 김윤구 김경윤 기자 heev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