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후 작년 첫 장관급회담 이어 정상회담까지 단숨에 돌파
대만정책도 '시진핑 직할체제'에 편입됐다는 분석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의 역사적 정상회담이 성사된 배경에는 양측의 맞아떨어지는 이해관계가 있다는 분석이 많다.

현재의 안정적인 양안(兩岸·중국과 대만)관계 유지를 희망하는 중국은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대만 총통선거에서 '독립노선'을 추구하는 야권이 집권하기를 원치 않고, 국민당은 정권 재창출에 '올인'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 주석과 마 총통의 이번 만남이 분단 이후 66년 만에 이뤄지는 첫 정상회담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중국의 행보에는 선거 개입을 뜻하는 '대만판 북풍(北風)' 이상의 함의가 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시진핑 체제의 대만에 대한 파격 행보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중국과 대만은 지난해 2월 11일 난징(南京)에서 분단 이후 65년 만에 처음으로 장관급 회담을 갖고 '당국 간 직접대화'의 시대를 열었다.

이는 민간대화가 시작된 지 21년 만에 만들어진 성과물로, 대만언론은 '신기원' 등의 표현을 써 가며 의미를 부여했다.

중국의 장관급 회담 수용은 '큰 양보'로 볼 수 있는 측면이 다분했다.

중국 입장에서 양안의 당국 간 회담은 중국이 한결같이 강조해온 '하나의 중국' 원칙을 스스로 훼손하는 의미로 비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의 돌파구가 열리면서 양안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도 함께 고조됐다.

마 총통 측에서는 오래전부터 정상회담을 희망해왔기 때문에 역사적 정상회담 성사의 최종 변수는 역시 시 주석의 결단이라는 관측도 같이 제기됐다.

시 주석은 장관급 회담이 끝난 지 일주일 만에 이뤄진 롄잔(連戰) 대만 국민당 명예주석과의 회동에서 '충분한 사전 준비'를 전제로 한 정상회담에 공감을 표시했다.

이번에 합의된 정상회담은 그의 적극적인 대만정책의 '결정판'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시 주석은 중국국가 지도자로는 이례적으로 항일전쟁 과정에서의 국민당의 활약을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항일 열병식 등 각종 국가행사에 국민당 노병들을 공식 초청해왔다.

롄잔 전 명예주석과의 작년 회동에서는 양안이 혈통과 정신, 역사 문화에 뿌리는 둔 하나의 공동체라는 점을 강조하는 한편 대만 동포사회가 선택한 사회제도와 생활방식을 존중한다는 뜻도 강하게 표명했다.

올해 5월에는 베이징에서 주리룬(朱立倫) 국민당 주석과 국공 수뇌회담을 열었다.

이는 2009년 5월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공산당 총서기와 우보슝(吳伯雄) 국민당 주석 간의 회담 이후 6년 만에 열린 양당 수뇌회담이었다.

새로워 보이는 시진핑 체제의 이 같은 대만 정책은 시 주석의 개인적인 정치경력과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분석들이 많다.

그는 1985년부터 2002년까지 샤먼(厦門), 닝더(寧德), 푸저우(福州) 등 대만과 마주한 푸젠(福建)성 일대에서 17년 반을 근무했다.

푸젠성 성장까지 역임한 그는 지난해 11월 이 일대를 시찰하던 중 대만 상인들과 만나 "양안은 같은 조상과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

피는 이어져 있고 문화는 서로 통한다"며 "함께 손을 잡고 발전하고 융합발전하지 않을 어떤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특히 그의 강력한 권력기반은 적극적인 양안정책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시 주석은 지난해 5월 열린 '중앙통일전선공작회의'에 참석해 통일전선 분야까지도 자신의 '직할체제'로 편입됐음을 시사했다.

중국의 정치체제에서 통일전선 업무는 민족 간 갈등, 종교문제 등을 조정하는 일을 뜻한다.

대만, 홍콩과의 관계도 넓게는 이 범주에 들어간다.

그러나 비교적 유연해 보이는 시 주석의 이 같은 양안 정책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대전제로 한 것으로, 만약 대만이 '독립행보' 등을 보이게 될 경우에는 결국 강경한 입장으로 선회하게 될 것이라고 관측통들은 전망한다.

(베이징연합뉴스) 이준삼 특파원 js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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